[이 아침에 만나는 시]이승하, '시간에게 묻는다'

  • 입력 2003년 10월 27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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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환자실 앞에서

시간이여

무수한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데

네가 필요한 것이냐

무수한 생명체를 소멸시키는 데

네가 필요한 것이냐

순간이 모여 영원이 되느냐

영원이 나누어져 순간들이 되느냐

가뭇없이 흘러만 가느냐

언제 출발하여 어디까지?

-시집 '뼈아픈 별을 찾아서'(시와시학사)중에서 부분 인용

갓 피어난 꽃잎과 칠순 노인의 살갗에 핀 검버섯의 나이가 같다면 무슨 흰소리냐 하겠지만 ‘있던 것은 없어질 수 없고, 없던 것은 있어질 수 없음’을 ‘질량보존의 법칙’이라 하니 우리 모두 무궁한 시간 속 큰 처음에 있던 동기동창들 아닌가? 시공의 큰 반죽 가운데 두엄은 꽃잎이 되고 꽃잎이 두엄이 되길 몇 차례던가.

삶의 연료가 고통인 줄을 알았다면 저마다 제자리에 가서 아프자. 우화등선(羽化登仙)하지 말고, 해탈(解脫)도 미루어 두고 ‘지층을 뚫고 별을 헤아리며’ 아픈 자리에 가서 아프자. 열반의 적막보다 고통의 축제는 얼마나 아리고 달콤한 것이냐.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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