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마종기, '산행2'

  • 입력 2003년 10월 26일 17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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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는 나무도 우는구나.

가는 어깨에 손을 얹기도 전에

밤새 모인 이슬로 울어버리는구나.

누가 모든 외로움 말끔히 씻어주랴.

아직도 잔잔히 떨고 있는 지난날,

잠시 쉬는 자세로 주위를 둘러본다.

앞길을 묻지 않고 떠나온 이번 산행,

정상이 보이지 않는 것 누구 탓을 하랴.

등짐을 다시 추슬러 떠날 준비를 한다.

시야가 온통 젖어 있는 길.

- 시집 ‘이슬의 눈’(문학과지성사) 중에서

이슬이 우리들의 눈물인 줄 아는 이 그대가 처음일세. 울음을 들켰으니 맘 놓고 울지도 못하겠네 그려. 들킨 눈물만큼 청승일 테니.

울음 없이 가는 길 어디 있겠나. 꽃 피던 봄날에도, 녹음 우거지던 여름날에도 여리디여린 뿌리털로 모진 바위 틈 비집던 세월이었네. 곳곳이 사금파리며 벼랑이었네.

우리의 울음 눈치 챈 그대도 꽤나 울보였나 보이. 겨운 일 있으면 한 줄금 울고 가시게. 천지가 이슬인데 무에 허물이겠나.

앞길 알고 떠난 삶이 어디 있으며, 정상인 줄 알고 멈출 정신의 우듬지는 또 어디 있겠나? 웃음은 피어 증발하나, 울음은 고여 생수가 되는 법. 세상 모든 꽃은 눈물꽃이라네. 시야가 흐리면 바위 턱에 좀 쉬어 가시게. 아주 버릴 수 없는 등짐도 좀 내려놓고. 바람이 등 두드려 달래주어도 제 외로움 다 울고 나야 멎으리.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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