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일기]"얘야, 시집가서 잘 살아야돼"

  • 입력 2002년 5월 23일 15시 33분


5월 5일 스물 여섯의 아리따운 아가씨로 성장한 외동딸이 결혼을 했다. 15년이 넘게 저혈압에 시달려 제대로 엄마 노릇을 못했기 때문인지 한 걸음 한 걸음 사뿐히 걸어나가는 딸의 모습을 보니 대견하고 미안한 마음에 마음 한 켠이 뭉클해졌다.

문득 15년 전, 딸의 초등학교 4학년 때 모습이 떠올랐다. 6월의 어느 날인가 반공 웅변대회가 열리던 날이었다. 그날 오후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자네 딸이 상을 타서 그 많은 상품을 낑낑 들고 가는데 얼마나 가엾던지… 대견한 일을 했는데 좀 데리러 가지 그랬어? 내가 대신 들어다 주었네.”

전화 수화기를 내려놓고 대문을 바라보는데 땀이 범벅이 된 딸이 들어서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상품 보따리를 마루에 내려 놓으면서 엄마의 죄책감을 아는지 모르는지 원망 한 점 없이 밝은 표정을 짓는 모습이 어찌나 대견하던지….

자주 병원 응급실 신세를 져야했던 지난 날 동안 나는 “제발 딸 결혼식에 건강한 모습으로 참석할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 꿈이 실현될 날을 앞두고는 몇 달 동안이나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수없이 연습을 했다.

앞으로 걷기, 뒤로 걷기…. 앞으로 걷는 것은 자신 있었지만 신랑 신부 어머니가 함께 촛불을 밝힌 뒤 뒤돌아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 순서가 마음에 걸렸다. 자칫 실수해서 딸의 결혼식을 망치지나 않을지…. 결국 남편이 대신 단상에 올라갔다.

결혼식이 끝난 후 눈치 빠른 친구들이 남편에게 “동금이 시집 잘 갔다는 게 그대로 드러나네요. 박사님답게 딸, 아내 사랑도 박사급이시네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엄마 도움 없이 혼자서 척척 결혼식을 준비해낸 딸아이, “딸 교육 잘 시켜 보내주어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는 사돈댁의 모습까지 고맙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아픈 나 때문에 고생했을 가족들의 모습을 바라보니 기쁨만큼 슬픔도 컸다. 아름다운 한복이 슬픈 엄마의 마음을 잘 감춰주리라 믿고 딸에게 속삭였다.

“잘 살아야 한다. 항상 부족하지만 엄마를 위해서라도 정말 잘 살아야 돼.”

장동금 53·주부·광주 서구 농성 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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