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일기]그리워요, 아빠의 영어과외

  • 입력 2002년 3월 14일 16시 00분


1970년…. 30년도 더 지난 이야기이다.

중학교 시험을 막 치르고 아직 졸업하기 전의 6학년 교실이라니…(그때 내 고향에서는 중학교를 무시험으로 가던 때가 아니어서 6학년들이 지금의 고 3 만큼이나 공부를 열심히 했다). 교실안은 금방이라도 떠나갈 듯 시끄러웠지만 나는 한쪽에서 영어공부를 해야 했다. 그땐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처음으로 알파벳부터 공부를 하던 때였으니, 영어책을 줄줄 읽고 있는 나를 아이들은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공무원이셨던 아버지께서는 큰딸인 내게 대한 기대가 유난히 크셨던 것 같다. 5학년때부터 내게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하셨으니 그때는 이미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인 뒤였으리라. 시험도 끝났겠다 아버지께서는 내 영어공부에 박차를 가하셨다. 나는 그 황금 같은 시기에 놀지 못하고 영어에 짓눌린 채 날마다 아버지의 숙제와 싸워야했으니 얼마나 놀고 싶었던지, 얼마나 공부가 하기 싫었던지.

아버지께서는 퇴근하셔서 일단 밥상을 물리시면 곧 나를 불러 숙제검사와 테스트를 하셨다. 가끔 꾀가 늘어 아버지 시야에서 벗어난 곳에 미리 커닝페이퍼를 붙여놓고 답하기도 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 내 영어실력은 온 학교에 소문이 났다. 중 3언니들까지 날 보기 위해 우리 교실을 찾아오곤 했다. 1학년 때 ‘영어회화부’에 들었었는데 모두 꿀먹은 벙어리처럼 멍하니 있을 때 난 중 3언니들을 제치고 선생님과 유창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 줄곧 “Good! Very good!”을 연발하시며 좋아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중학교에 들어간 후에도 영어 일기며 영어 펜팔이며 아버지의 노력은 끝이 없으셨다. 하지만 멈추어버린 내 어리석음이라니…

지금의 내 영어실력은 그때 수준에 멈춰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끝내 아버지의 기대만큼 열심히 하지 못하고 머물러 버린 것에 대하여 돌이켜보면 얼마나 죄송스러운지…. 내가 부모가 되어 요즈음의 ‘대치동 신드롬’을 접하다보니 그때 아버지의 노력과 열성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음을 뼈져리게 느낀다.

‘아버지! 다시 한번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꾀 부리지 않고 열심히 할 수 있으리요만…. 참으로 그때가 그립습니다!’

이영아 44·공인중개사·서울 송파구 오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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