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하의 만화세상]일러스트레이션 모음집 'ACTⅢ scene8'

  • 입력 2002년 7월 21일 17시 38분


새로운 시각이미지의 실험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 일러스트레이션 모음집 ‘ACT Ⅲ’(디자인하우스)

이번에 소개하는 책의 제목은 ‘액트 쓰리 씬 에잇’(ACT Ⅲ scene 8)이다. 책에는 오로지 영어로만 써있으니 꽤 낯설다. 어떻게 읽어야 좋을지 난감하다. 하지만 책의 구성을 살펴보고 제목을 보면 쉽게 이해된다. 아니, 오히려 너무 적나라하다. 그러니까 ‘액트 쓰리’는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을 뜻하고, ‘씬 에잇’은 ‘김형태, 정준호, 강우호, 펜손, 강신웅, 김수용, 나예리, 박무직’을 뜻한다. 제목의 수수께끼만 풀리면 이 책이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려 하는가를 쉽게 이해하게 된다.

만화에서 컬러 일러스트레이션은 잡지나 단행본 표지, 아니면 특별 부록용 브로마이드를 장식하는 정도로만 활용되었다. 순정만화 잡지마다 ‘컬러 일러스트레이션’이 실리기도 하지만 단행본으로 묶이지 않는 단발적인 시도들이 대부분이었다. 만화는 단지 만화로만 접근하며 스스로 시장의 가능성을 축소했기 때문이지 독자들의 수요는 풍부했다. 작년 8월 출간된 박희정의 일러스트레이션 모음집인 ‘씨에스타’(Siesta)가 거둔 상업적 성공은 만화출판물의 다양화에 대한 출판사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 지난 5월 두 권의 일러스트레이션 모음집 ‘인디고’(Indigo)와 ‘ACT Ⅲ’가 출판된 것이다. ‘인디고’는 가장 아름다운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린다고 평가받는 권신아의 작품집이며 두 번째는 여러 작가들, 그것도 만화와 게임, 애니메이션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일러스트레이션을 모은 작품집이다.

일러스트레이션 모음집의 완성도를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쇄의 품질과 책의 디자인이다. 인쇄의 품질은 일러스트레이션의 표현 테크닉과 내용에 따라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바를 얼마만큼 효과적으로 표현해 낼 수 있느냐의 문제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본질적으로 종이의 특성까지를 고려해야만 좋은 인쇄품질을 얻을 수 있다. 아무래도 이야기 없이 일러스트레이션만 계속되는 작품집이므로 편집 디자인은 일러스트레이션에 이야기를 넣어주는 역할을 한다. ‘ACT Ⅲ’는 이 두 요소를 무난하게 만족시킨다. 각각 상이한 일러스트레이션을 묶어내고, 각 작가마다 인터뷰와 리뷰를 달고 기본 판형의 2배에 달하는 브로마이드를 제공하니 만족스럽다. 게다가 각각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서로 다른 일러스트레이션은 작가의 특성과 함께 매체적 특징까지를 함께 보여주어 더욱 흥미롭다. 주로 게임의 메인 일러스트레이션과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하는 김형태의 작품은 예의 귀여운 미소녀 스타일이고, 애니메이션이나 특수촬영물의 디자이너로 활동했던 강신웅의 작품에서는 초현실적인 괴물들이 주로 등장한다. 김수용, 나예리, 박무직의 작품은 문외한이 보아도 만화가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자기 정체성이 작품에도 투영된다. 서울옥션의 경매행사로 기획되어 단행본으로 이어졌지만, 단행본 그 자체만으로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다.<끝>

박인하 만화평론가·청강문화산업대 교수

enterani@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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