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하의 만화세상]홍승우, 컬러그림 '그린벨트…' 수집대상1호

  • 입력 2002년 4월 7일 17시 25분


‘명랑만화’는 그 이름처럼 친숙하고, 밝고, 유쾌한 만화(길창덕의 ‘꺼벙이’, 박수동의 ‘번데기 야구단’, 윤승운의 ‘두심이 표류기’와 같은 만화)들을 통칭한다. 지금은 신문에 가족만화를 연재하는 작가로 유명하지만 홍승우는 원래 명랑만화를 그리는 작가다.

1988년 홍익대의 만화동아리 ‘네모라미’를 결성한 홍승우는 회지를 통해 명랑만화의 문법을 충실히 계승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획일화된 상업만화를 극복하기 위해 시각이미지의 실험을 추구하던 ‘네모라미’에서 가장 친근한 작품을 그렸던 것이다.

1995년, 지금은 폐간된 ‘빅점프’에 ‘에피소드’로 본격적인 작가활동을 시작한 뒤, 1997년 ‘영점프’에 ‘그린벨트 대작전’을 올 컬러 만화로 발표했다.

우리나라 만화의 주류는 흑백 만화다. 그래픽의 전통에서 뿌리내린 서구만화와 달리 동아시아 만화는 선화의 전통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세한 우리나라 만화출판업체들은 흑백만화보다 몇 곱절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컬러만화를 찍을 엄두를 못 냈다.

이런 상황에서 100% 컬러만화로 연재되고 그것을 그대로 살린 단행본으로 출판된 ‘그린벨트 대작전’은 만화 수집가들의 수집 대상 1호로 떠올랐다. 칼라도 칼라지만 만화 자체의 완성도가 워낙 높았기 때문이다.

‘그린벨트 대작전’은 밉지 않은 과장과 캐릭터의 개성이 잘 조화된 작품. 미래의 인류, 사막을 가운데 두고 기계국과 그린벨트가 존재한다. 환경이 오염된 기계국은 기계의 힘으로 겨우 생존해 나간다. 그린벨트 지역은 환경이 완벽하게 보존돼 있어 속옷 하나만 걸치고 살아간다.

기계화 추진계획에 반대하던 닥터 매드는 부상을 입고 사막으로 추방당한다. 그런 그를 구한 것은 그린족. 그린족은 닥터 매드의 힘을 빌어 그린벨트 지역에서 발견한 거대한 생체 로봇을 움직인다. 이 생체 로봇은 각종 생명체로 분해, 결합할 수 있는 첨단 매커니즘. 닥터 매드와 생체로봇, 그리고 그린족은 기계국의 침입에 맞서 그린벨트 지역을 지킨다.

등장 캐릭터가 많아 다소 이야기가 산만하지만 스토리는 무리없이 연결된다. 극적 반전이나 서스펜스보다는 순간 순간의 상황에서 발생하는 슬랩스틱 개그도 친숙하다. ‘그린벨트 대작전’의 슬랩스틱 개그는 1990년대 익숙해진 일본만화식 개그와는 또 다른 맛을 전해준다.

상업연재의 패턴에 익숙하지 못해 독자를 작품 속으로 끌어당기는 힘은 약하지만, 생기발랄한 한 작가의 데뷔 초기 매력을 접할 수 있다. 이 책의 디자인과 외관도 수집의 욕구를 자극한다. 고급 아트지는 컬러의 색감을 풍부하게 살려놨다. 1998년도에 출판되었으니 벌써 5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낡아 보이지 않는 책이다.

만화평론가·청강문화산업대 교수

enterani@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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