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현의 바둑세상만사]여자들이 몰려오고 있다

  • 입력 2000년 10월 23일 11시 08분


루이 나이웨이 9단
루이 나이웨이 9단
몇 년 전만 해도 여성바둑은 한 수 아래로 낮추어보는 경향이 강했다. 여성바둑을 두고 '화초바둑'이니 '기쁨조'니 해가며, 어찌들으면 민망할 정도로 낮추어 평가했다. 여성들이 그동안 다른 분야에서는 두각을 나타내면서도 바둑에서만은 남자의 벽을 뛰어넘지 못했던 그 동안의 사정이 여성바둑을 우습게 보는 배경이 되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프로와 아마추어를 불문하고 여성바둑이 강하지 못한 이유로는 대체로 다음 두가지를 들고 있다.

하나는 선천적으로 여성은 남성에 비해 바둑을 잘 둘 수 없다는 생물학적 주장이다. 언젠가 모 텔레비전 방송에서 흥미있는 실험결과를 방영한 적이 있다. 여성이 좁은 공간에서 주차 시킬 때 남성에 비해 유난히 사고를 많이 내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따져본 프로그램이었는데, 실험결과 여성은 남성보다 공간 인지능력이 떨어지므로 주차시 사고를 많이 낸다는 얘기였다.

바둑도 공간에서의 형태를 파악하는 능력이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이 가설을 적용하면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바둑을 잘 두기 어렵다는 얘기가 성립한다.

그러나 이 가설이 맞다면 길을 잃는 사람 중에는 여자가 많아야 하고, 여성은 건축설계사 같은 분야에서 대성하기 힘들어야 하는데 실제로 어떤지 필자는 아직 잘 모르고 있다.

다른 하나는 사회문화적인 원인을 들 수 있다. 우리뿐만 아니라 바둑이 활발한 일본,중국 등 동양 3국에서 바둑은 오랫동안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때문에 여성들은 바둑을 배우기 힘들었고, 사회적으로도 여자가 바둑 두기에 유리한 여건이 아니었으므로 여성바둑이 약하다는 설명이다. 이 편은 그래도 어느 정도 타당성을 지닌 주장으로 들린다.

원인이 무엇이든 이제는 한 사람의 '천재'가 등장함으로써 여성바둑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변화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루이 나이웨이 9단의 출현이다.

그는 한국에 오기 전에 이미 세계정상급 기사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가까이에서 그를 지켜본 적이 없으므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루이 나이웨이 9단은 한국에 오자마자 보란 듯이 국수위를 떡하니 차지해버렸다.

다른 기전도 아니고 우리 바둑계의 상징적인 타이틀이라 할 수 있는 국수위를 외국인 기사가 냉큼 가져간 것이다. 한국바둑계로서는 자존심에 금이 갔다고 용렬한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국내에서는 대체로 그의 국수 등극을 놀라워하면서도 칭찬하는 분위기였다. 그 이면에는 그가 여성이라는 이유도 크게 작용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제는 루이 나이웨이 9단의 등장으로 여성바둑을 바라보는 시각이 과거와는 완연히 달라졌다. 여성바둑을 한 수 낮추어보던 시대에서 여성바둑을 인정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국내 여성프로기사들도 루이 9단에게 자극받아 그 실력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아마추어 바둑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요즘 들어 여성 바둑인구가 부쩍 늘고 있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여성들의 바둑 입문에 큰 장애가 되었던 사회문화적인 제약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젠 기원엘 가질 않고도 집에서 편히 바둑을 두는 시대가 되었다. 어느 인터넷 바둑 사이트를 가보아도 여성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들어온다.

바둑은 여자에게도 무척 어울리는 취미이다. 어느 면에선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권하고 싶은 것이 바로 바둑이다. 앞으로 여성바둑의 '만개'를 기대해보자.

김대현 <영화평론가 아마5단> momi21@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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