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땅을 뺏기던 날 아버지는 마지막 고구마를 캐어 오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나와 아버지/옌롄커 지음·김태성 옮김/328쪽·1만3000원·자음과모음

마오쩌둥의 사상과 위상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중국 내에서 ‘5금(禁) 조치’(출판·홍보·게재·비평·각색 금지)를 당했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2005년), 중국의 에이즈와 매혈 문제를 짚은 ‘딩씨 마을의 꿈’(2006년) 등 중국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소설을 주로 써온 저자가 내놓은 에세이다.

1960년대 중국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자신의 유년 시절과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졌던 아버지와 삼촌들의 고단한 삶을 담담한 어조로 회고했다. 빛바랜 흑백 영상을 연상시키는 담백하고 간결한 이야기들이 잔잔한 울림을 이끌어낸다.

1960년대 중국은 ‘3년 대기근’으로 3000만 명 이상이 죽고 문화대혁명이 촉발된 극심한 혼란기였다. 하지만 작은 농촌 마을 사람들의 문제는 미래의 혁명이 아니라 오늘과 내일의 생존이었다. 아버지와 그 형제들이 하나둘 세상을 뜨면서 인생에 대해 고찰하기 시작했다는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의 인생은 쌀과 땔감, 기름과 소금을 얻기 위해 온갖 고생과 즐거움, 생로와 병사 속에서 몸부림친 고통이었다.”

30대에 천식에 걸렸지만 변변한 처방조차 받지 못하고 병을 키웠던 아버지의 관심사는 한 톨의 양식이라도 더 일궈내고 번듯한 기와집을 자녀들에게 지어주는 것이었다. 그는 해가 뜨면 밭으로 나가 어둠이 내릴 때까지 고된 노동을 멈추지 않는다. 국가에 귀속되지 않은 자투리땅을 3년에 걸쳐 개간해 고구마 농사를 지었지만 하루아침에 정부에 뺏긴 뒤 아버지는 집을 나간다.

“어둠이 내려앉을 쯤에야 아버지는 힘이 다 빠진 모습으로 돌아오셨다. 손에는 한 무더기의 고구마 줄기가 들려 있었고 줄기 아래쪽에는 붉고 커다란 고구마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마지막 수확을 하고 온 아버지 앞에서 가족은 말문을 잃었다.

양말을 짜는 기계를 들고 돌아다니며 장사를 했던 큰아버지, 한평생 시멘트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했던 넷째 삼촌의 인생사도 잔잔히 펼쳐진다.

문화대혁명의 격동이 서민에게 미친 영향도 상세히 그려냈다. 넷째 삼촌은 고장 난 기계를 수리하느라 손까지 다쳤지만 수리가 지연돼 인민에게 손해를 입혔다며 월급 절반이 깎인다. 초등학교 시절 성적을 올리기 위해 노력했던 저자는 한순간에 필기시험이 폐지되면서 공허를 느낀다. 고교 중퇴 후 군대에 들어가 25년을 보낸 뒤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는다.

책은 억지 감동을 유도하지 않고 차분한 묘사와 정제된 어법으로 일관한다. 척박한 삶 속에서 가족을 먼저 생각하며 자신을 희생한 아버지들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뭉클하다. 단지 ‘아버지의 병세’ 등의 내용이 반복해서 등장하거나 가난을 키워드로 한 에피소드가 병렬식으로 이어져 다소 지루한 느낌도 준다.

“중국에는 세 가지 현실이 존재합니다. 최근 급속히 번영하고 있는 중국의 현재, 그리고 ‘3년 대기근’ 등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하고 있는 ‘은폐된 진실’, 마지막으로 어렵게 생활했던 아버지 세대에 대한 ‘잊혀져 버린 현실’입니다.”

‘은폐되고 잊혀져 버린 중국의 과거’를 젊은층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