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의 우리문화 우리건축]통일시대의 건축

  • 입력 1999년 12월 26일 21시 08분


카운트다운은 시작되었다. 21세기의 시작점이 어디이든 새로운 시기는 바로 몇 발 앞으로 다가왔다. 그 21세기는 통일의 시대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개마고원의 스키장이 개장하면 강원도의 스키장 몇은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여름 휴가철이면 함경도로 향하는 고속도로 정체가 심하다는 보도도 나올 것이다. 21세기는 그런 시대가 되어야 한다.

분단이 만든 문화의 장벽은 높고 골짜기는 깊다. 아이스크림과 얼음 보숭이의 차이는 건축에도 새겨져 있다. 북한에서의 건축 대접은 남한과 다르다.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정치지도자의 저서 목록에는 ‘건축예술론’이 끼어있다. 남한의 건축가는 영화 속에서는 잘 생긴 신사로 그려져도 현실에서는 설계업자 이상의 대접을 받기는 어렵다. 그러나 북한의 건축가는 영웅 칭호를 받을 수도 있다.

▼혁명에 봉사하는 北건축▼

북한이 만들어낸 도시와 건축은 그들의 가장 큰 자부심의 하나인 듯하다.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건축가는 프랑스의 르 코르비제(Le Corbusier). 북한은 르 코르비제의 이상적 도시 계획안을 실현한 지구상의 유일한 도시가 바로 평양이라고 이야기한다. 넓은 길과 높은 건물, 그리고 풍부한 녹지로 이루어진 평양은 그런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게도 한다.

한계는 보인다. 적어도 사진 속의 건물들은 그렇다. ‘공산주의 건축은 혁명과 건설에 이바지하는 것을 기본 사명으로 하는 혁명적 건축’이라는 ‘건축예술론’의 서술은 북한 건축의 한계를 이야기한다. 주체사상탑, 천리마 동상, 개선문이 무지막지한 크기로 늘어선 도시, 상금보다 훈장이 중요한 사회답게 간판이 아닌 구호가 보이는 도시는 초현실적이고 기이하다. 북한의 건축 디자인 수준이 꼭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질문은 우리에게도 해보아야 한다. 북한의 건축가들도 물을 것이다. 서울의 ‘고층살림집’들은 어떻게 이리 조국 산하를 ‘까부수면서’ 세워졌느냐고. ‘인민’들이 밝은 얼굴로 걸어다녀야 할 도시에 왜 이리 자동차들만 대접받고 사느냐고. 경치 좋은 곳에 어김없이 들어선 ‘러브호텔’은 뭐 하는 데냐고. 쏘가리매운탕, 토종닭 판다고 써놓은 집들은 왜 그리 많고 왜 그리 대강 지었느냐고.

▼분별없이 들어선 南건축▼

그런 남한이 북한을 개발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 개발의 도구는 항상 건축이다. 호텔, 공연장, 온천장으로 이루어진 위락 시설도 짓고 산업공단도 짓겠다고 한다. 언제나 서둘러 짓고 대강 지어 이 땅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던 그 힘으로 짓겠다고 한다. 설계를 끝내기에도 빠듯한 시간 안에 건물을 완공하겠다고 한다. 공기를 단축해 금강산관광시설을 지었다는 자랑은 들려도 꼼꼼하고 아름답게 지었다는 자랑은 들리지 않는다.

통일의 교두보로서 개발은 가치 있고 필요하다. 그러나 정말 물어야 할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개발인가 하는 점이다. 통일이 되면 남한의 압도적인 자본력은 북한으로 밀려갈 것이다. 재테크와 떴다방으로 대변되는 시뻘건 눈으로 그 땅의 구석구석을 재고 파헤칠 것이다. 양수리와 미사리를 가득 메운 그 괴상한 건물들을 북한에도 짓겠다고 나설 것이다. 돈만 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사고로 바라본 우리의 통일 이후는 그래서 밝지 않다.

▼'빨리빨리病'부터 고쳐야▼

통일이 되면 당신의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가 간첩일지도 모른다는 지하철 역의 슬픈 계몽광고도 사라질 것이다. 113이라는 전화번호의 의미도 바뀔 것이다. 실탄이 장전된 기관총과 크레모아로 지키던 비무장 지대는 화석으로 남을 것이다. 그 아래를 관통하는 땅굴도, 위로 솟은 경계초소도 모두 우리시대가 역사에 그려놓은 유적으로 남을 것이다. 경기도와 강원도 북부의 군부대는 사라지고 그 땅은 새 그림을 그릴 도화지가 될 것이다.

그 자리를 뭘로 써야 할 지에 대한 진지한 대비와 행복한 고민은 필요하다. 생태계의 보고로 자리잡은 비무장지대를 노릴 보신원의 동물 사냥꾼도 막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정말 필요한 것은 통일 후 부끄럽지 않은 도시와 국토를 여기에 만들어 놓는 일이다. 먹고 마시고 노는 것으로 가득 채워진 산과 들, 온갖 폐수로 시커멓게 변한 강을 놓고 부끄럽지 않게 통일을 맞겠다고 하기는 어렵다. 쉽게 짓고 빨리 허문다는 사고는 사라져야 한다. 그것이 문화적 통일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비다.

삼국 통일의 가치는 그 이후 꽃핀 문화와 예술로 확연히 평가된다. 불국사의 석축과 석굴암의 불상은 돌에도 피를 돌게 하던 그 시대의 흔적이다. 21세기의 남북 통일이 7세기의 삼국 통일을 뛰어넘는 문화적 성취를 역사에 남길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문화적 통일을 위한 카운트다운은 이미 시작되었다.

서현(hyun1029@chollian.net)

hyun1029@chollian.net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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