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두산의 ‘굴러 들어온 호박’ 이승학

  • 입력 2007년 9월 24일 14시 37분


코멘트
해외파 특별지명 당시, 롯데는 부산 출신인 송승준과 이승학을 두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아마추어 시절 기량은 분명 송승준이 위였지만 안정감에서는 이승학이 다소 앞섰다. 롯데는 결국 파워피처인 송승준을 지명했고 이승학은 고향과 멀리 떨어진 서울 팀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지금 롯데 구단은 이승학을 바라보면서 입맛을 다신다. 어느새 이승학은 두산에서 없어서는 안 될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7승 1패 평균자책점 2.25를 기록 중인 이승학은 롯데가 뽑은 송승준을 능가하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승학의 진가가 명확히 드러난 경기는 지난 18일 LG전. 0-0의 팽팽한 균형을 이루던 9회말, 두산은 1사 3루의 위기에 봉착했다. 두산으로서는 외야플라이나 폭투 하나만 나와도 경기가 그대로 끝나는 절체절명의 위기. 마운드에 선 이승학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후속타자 손인호와 조인성을 연속으로 삼진 처리했다.

보통 1아웃 득점권 위기에서 1루가 빌 경우, 소극적인 승부가 나오곤 하지만 두산 벤치는 과감하게 정면 승부를 택했고 이는 이승학의 제구력과 두둑한 배짱을 믿었다는 반증이다. 결국 이승학은 벤치의 의도대로 자신의 몫을 100% 수행했고 결국 팀의 승리를 이끈 일등공신이 됐다. 미국 마이너리그 시절, 승학이라는 이름의 앞 글자만을 따 ‘승 리’로 불렸다는 이승학이 실제로 두산에게 승리를 가져다준 셈이다.

지난 14일 비가오던 잠실야구장 덕아웃에서 이승학을 만났다. 미국 스카우터들이 체격 좋은 선수를 선호한다는 말이 실감이 갔다. 최희섭이 그랬고 이승학 역시 상당한 거구였다.

스포츠동아 : 두산 베어스 팀 분위기에 적응은 잘하고 있나?

이승학(이하 이) : 선수인 내가 팀 분위기에 맞춰가야 하는 입장이다. 분위기 적응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스포츠동아 : 두산이 고향 팀은 아닌데...(그의 고향은 부산이다.)

이 : 어차피 다 야구했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아닌가. 어디라도 마찬가지다. 서울 팀이라서 이질적인 느낌은 전혀 없다.

스포츠동아 : 팀 내에 친한 선수는 누구인가?

김진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같이 야구를 했었고, 채상병, 정재훈 등은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은 사이다.

스포츠동아 : 국내 복귀 길이 열리기 전까지 야구를 계속 할 수 없는 난감한 상황 아니었나?

올 초 만 해도 다시 미국에 돌아가려고 했다. 필라델피아 필리즈와의 계약 기간도 끝났고 에이전트가 새로운 팀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한국야구위원회에서 해외파 선수들에게 국내 복귀 기회를 줬고 개인적으로도 국내에서 다시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스포츠동아 : 가족들은 이승학 선수가 한국에서 야구하는 것에 만족하나?

사실 어머니께서는 내가 미국에서 계속 야구하기를 원하셨다. 당신 아들이 더 큰 무대에서 운동 하는걸 바라신 듯 하다. 물론 메이저리그까지 올라가진 못했지만 어머니께서는 메이저리그에만 올라가면 내 야구인생에 큰 의미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스포츠동아 : 두산 유니폼을 입고 첫 경기 마운드에 섰을 때 기분이 어땠나?

미국 마이너리그에도 많은 관중이 들어오지만 두산 데뷔전 때는 특히 관중도 많았고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다. 좀 들떴고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다.

스포츠동아 : 이승학 선수가 활약했던 미국 마이너리그 트리플A와 국내프로야구를 비교한다면?

비교가 좀 힘들다. 타자들 같은 경우 마이너리그에서는 타순 구분 없이 적극적으로 배팅한다. 승부보다는 개인의 실력을 알리기 위한 무대이기 때문이다. 반면 국내 타자들은 배트를 짧게 잡고 많은 공을 보고 커트도 잘 해낸다.

스포츠동아 : 그렇다면 한국 타자들이 좀 더 까다롭다는 이야기인가?

그런 면이 있다. 내가 변화구를 던져서 이 정도면 됐다 싶다가도 타자들이 커트시키니까 상대하는 게 쉽지 않더라. 극복 못할 것은 아니지만 아직까지 한국 프로야구에 대해서 공부할 것이 많다.

스포츠동아 : 미국에서 뛰던 시절과 지금을 비교해 투구 스타일이 얼마나 바뀌었나?

특별히 볼배합을 달리한건 없고 단지 미국에서는 오른쪽 타자의 몸쪽 공을 (스트라이크로) 잘 안 잡아주는데 한국은 몸쪽을 잘 잡아줘 이점을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 내가 국내 타자들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 포수가 사인 해주는 대로 던지고 있다.

스포츠동아 : 두산의 포수 채상병과 호흡은 괜찮은가?

대학시절부터 함께 알고지낸 사이다. 상병이가 나보다는 국내 타자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상병이를 전적으로 믿고 던진다.

스포츠동아 :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종차별 때문에 메이저리그까지 올라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실인가?

아무래도 인종차별이 없지는 않았다. 외국에서 뛰었던 다른 한국 선수들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실력과 성적을 봐서는 내가 분명히 낫다고 생각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면 미국 선수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 물론 내가 감수해야 하는 몫이었지만 매우 힘들었다. 국내에는 용병 수가 제한되어 있지만 미국에는 워낙 많은 외국 선수들이 뛰고 있어 인종차별 문제가 종종 일어난다.

스포츠동아 :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필라델피아 마이너시절 함께 뛰었고 지금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 된 게빈 플로이드의 경우 마이너에서는 내가 분명히 앞서있었다. 트리플A에도 내가 먼저 올라갔다. 그런데 플로이드는 어렵지 않게 40인 로스터에 포함된 반면 나는 40인 로스터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나는 2002년 마이너에서 다승과 이닝 탈삼진 등에서 리그 5걸에 들었다. 그런데 구단에서는 선발 그만하고 중간으로 가라고 했다. 왜냐고 물어보니 선발진에 유망주가 많으니 내가 선발로는 힘들다는 이유였다. 분명히 성적과 실력은 내가 좋은데 더 젊은 유망주를 키워준다는 거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기회의 나라라는 미국에서 이런 경우를 당하니 참 힘들기도 하고...

스포츠동아 : 플로이드 예를 들었는데 그렇다면 현재 필라델피아 메이저 팀에서 뛰고 있는 일부 선수들이 이승학선수보다 못했다고 생각하나?

마이너리그에서 봤던 콜 하멜스 같은 선수는 지금 필라델피아 에이스다. 콜은 마이너때부터 내가 봐도 정말 잘 던지더라. 이런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올라가는 것은 내가 할 말이 없다. 내가 느꼈던 인종차별은 40인 로스터에 포함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못해서 못 올라갔으면 할 수 없지만 잘했지만 기회를 안 준 것 아닌가. 40인 로스터에 포함만 됐더라면 빅리그 기회도 있었을 텐데 너무 아쉽다.

스포츠동아 : 고향 팀 롯데가 해외 복귀파 지명 때 송승준을 지명했는데 아쉽지 않나?

아쉽지 않다. 송승준은 내 고향 후배고 미국에서 자주 만나 친한 사이다. 후배가 잘하면 좋은 것 아닌가. 부산이건 서울이건 야구하는 것은 똑같다. 승준이가 잘하면 기꺼이 박수쳐 주겠다.

스포츠동아 : 스스로 보기에 송승준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나?

내가 판단하기 보다는 옆에서 보는 사람이 판단할 몫이다. 승준이는 파워피처고 나는 파워보다는 제구력 위주의 투구를 하기 때문에 차이는 있다. 나도 대학교까지는 파워피처였는데 허리 다치고 재활하면서 제구력 위주로 변했다. 그래도 간혹 빠른 볼을 던지려고 노력한다. (실전에서 나온 이승학의 직구 최고 구속은 147km다.) 또 다른 해외파인 LG 봉중근도 최근 변화구 투수로 변한 것 같은데 나는 그 중간인거 같다. 빠른 공으로 삼진 잡는 것도 좋지만 삼진 잡느라 투구수가 많아지면 많은 이닝을 못 던지는 단점도 있다. 나는 때에 따라서는 직구와 변화구를 적절히 섞어서 던진다.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능력은 내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스포츠동아 : 시즌 중 들어온 올해보다 풀타임 첫해가 될 내년 더 큰 목표가 있을텐데...

내년 두산에는 이혜천, 이재우 이재영 등이 돌아와 투수 자원이 더 많아진다. 내가 선발로 뛴다는 보장이 없다. 나는 선발이 편하지만 선수들과 선의의 경쟁에서 이겨야하는 상황이다. 올해 마무리 훈련부터 동계훈련까지 착실히 준비해 두산 선발의 한 축이 되고 대표팀도 해보고 싶다. 두산하면 리오스-렌들 원투펀치가 유명한데 여기 제 이름을 포함시킬 수 있도록 하겠다. 우선은 팀 내 선발 경쟁에서 살아남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스포츠동아 :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 마디 해 달라.

해외파라고 하는데 처음에 좋은 모습은 못보여 죄송했다. 하지만 점점 페이스가 올라오고 성적도 좋아지고있어 올해보다는 내년에 더 좋은 활약을 보여드리겠다.

정진구 스포츠동아 기자 jingoo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