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조광래의 ‘만화축구’ 꼭 필요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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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일 11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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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에서 작전을 지시하고 있는 조광래 감독.
벤치에서 작전을 지시하고 있는 조광래 감독.
1955년 76세를 일기로 타계한 알버트 아인슈타인. '천재'의 대명사인 아인슈타인은 최고의 물리학자로 꼽히지만, 그를 소개할 때면 철학자 겸 작가라는 명칭이 따라붙는다.

어릴 때부터 수학과 물리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아인슈타인은 학창 시절에는 철학자 칸트의 저서를 읽으며 지식의 폭을 넓혔고, 연구 활동 과정에서는 소설, 영화, 연극, 음악에서도 많은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갈릴레이나 뉴턴의 역학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은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은 이처럼 천재적인 이과(理科)적 두뇌와,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문과(文科)적 머리가 합쳐져 나온 위대한 업적이다.

아인슈타인이 별세한 뒤 그의 몸은 화장돼 연구소 주변에 뿌려졌으며 뇌만 따로 떼어내 보관 중이다. 그의 뇌를 놓고 여러 가지 연구가 진행됐지만 논리를 관장하는 뇌의 부분이 일반인들보다 더 부피가 크다는 사실만 밝혀졌을 뿐 특이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는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저 별빛이 곡선으로 휘어지면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을 하고 이를 물리 이론으로 논리적으로 증명해 낼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단순한 뇌의 기능이 아닌 '영적'인 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노벨상을 탈만한 과학자가 아직 나오지 않는 이유도 한 분야에 뛰어난 인재는 많지만 아인슈타인처럼 과학자이면서도 철학자인, 문, 이과적인 재능을 고르게 갖춘 영적 천재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학문의 세계 뿐 아니라 스포츠에서도 최고의 경기력을 보이는 선수들은 운동 기능 뿐 만아니라 상상력과 투지, 의지력 등 정신이나 심리적 면에서도 월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적인 축구 골잡이들 중에는 휴식 시간에도 골문 앞에서의 여러 가지 상황을 머리 속에 그려보고, 상황에 따라 어떻게 골을 넣을 수 있는지를 상상하고, 실제 훈련을 통해 이를 실현화 시킨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요즘 한국축구대표팀 조광래 감독의 '만화축구'가 축구 팬들 사이에서 화제다.
'만화축구'라는 말을 처음으로 한 축구대표팀의 이청용.
'만화축구'라는 말을 처음으로 한 축구대표팀의 이청용.

'만화축구'라는 말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볼턴에서 뛰고 있는 한국축구의 기대주 이청용에게서 나왔다.

정교한 패스를 바탕으로 빠르면서도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하는 조광래 감독은 7월 축구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 여러 가지 전술을 대표 선수들에게 주문하고 있다.

조 감독은 대표팀 소집 때마다 다양한 전술을 그림으로 그려서 선수들에게 설명하고, 이를 운동장에서 실현시켜 주기를 바라지만 대표팀 훈련 기간이 짧다 보니 아직 선수들이 여러 가지 주문에 적응을 제대로 못하고 있고, 그래서 '만화축구'라는 말이 나온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조광래 감독의 '만화축구'는 한국축구가 세계 정상권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보다 훨씬 앞서는 축구 인프라를 가지고 있는 유럽과 남미의 축구대표팀들을 상대로 월드컵 등 국제대회에서 정상권에 들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독특한 축구전술이 필요하고 이는 지도자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과 남미의 여러 국가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으면서 그 나라 축구를 연구했던 조 감독이 내놓은 여러 가지 축구전술은 처음에는 만화처럼 보일 지라도 충분히 실행 가능할 것으로 본다.

손질하지 않는 부스스한 머리에, 어눌한 말투…. 평소 대 과학자 답지 않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던 아인슈타인. 그래서인지 그의 사후 미국의 시사 잡지인 '타임'은 '아인슈타인은 만화가의 꿈을 이루게 한 주인공'이라는 정의를 내리기도 했다.

조광래의 '만화축구'. 이를 경기장에서 실현시킬 한국축구의 기린아는 누가될까.

권순일 기자 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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