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프볼]용병 다루기 '10인10색'

  • 입력 2002년 3월 11일 14시 06분


한국농구에 용병이 도입된지 벌써 6년째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었던 엄청난 탄력을 바탕으로 한 호쾌한 덩크슛과 한 수 위의 테크닉이 이제 더 이상 낯설게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국내코트에 검은 용병은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

‘한국농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블랙 콤플렉스를 상당 부분 줄여 국제경쟁력을 강화했다’ 등의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최근에는 악영향 및 부정적인 측면이 크게 대두되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용병세계. 밖에서 볼 때 이 정도인데 안에서 직접 뽑고, 관리하는 각팀의 사령탑에게는 더욱 말할 필요가 없다. ‘책으로 한 권을 써도 모자란다’는 용병으로 인한 웃지못할 에피소드. 용병에 얽힌 주요 사건과 감독들의 용병술(傭兵術)을 살펴봤다.

사실 어떤 감독이 어떤 스타일이라고 규정지어 말하기는 쉽지 않다. 용병으로 인해 워낙 고민을 많이하는 탓에 대부분의 감독이 온갖, 모든 방법을 다 현재진행형으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의 유형은 대표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어떤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대처했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맞을래 제대로 뛸래? 위협형▼

참다 참다 못해 폭발하는 경우. 거의 대부분의 감독이 상용하고, 또 그만큼 즉각적인 효과가 있다(용병들은 특히 흑인인 경우 생각보다 겁이 많다). 문제는 몇차례 반복되다보면 약효가 떨어지고, 지난 해 기아의 듀언 스펜서의 항명 사건처럼 끝장이 나는 반발을 초래할 수 있다.

스펜서의 경우 대표적인 관리형인 박수교 감독이 시즌 막판 화를 폭발했다가 당하던 스펜서가 주먹을 쥐고 대든 불미스런 대표적인 사례이다. 폭행사건까지 치닫지는 않았지만 최악의 용병사건으로 남아있다. 박광호, 박수교 감독을 비롯 올 시즌 조니 맥도웰의 오만방자함을 같은 덩치로 휘어잡은 임근배 인천 SK빅스 코치, 황유하 감독 등이 대체로 위협형에 속한다.

최근에는 용병제도가 바뀌면서 ‘못하면 돌려보내겠다’,’그러면 엄청난 금전적인 손해다’는 식으로 금전형과 결합한 위협형이 유행이다. 주로 단장과 같은 프런트직원이나 김동광 감독이 즐겨 쓴다.

▼혹시 용돈 궁하지 않니? 금전형▼

역시 자본주의에선 ‘쩐’이 최고.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용병들의 호주머니를 채워주며 동기유발을 한다. 위협형과 마찬가지로 가장 많이 쓰이는 수법. 문제는 한국농구연맹(KBL) 규정을 위반하는 모양이 돼 공공연히 밝힐 수가 없다는 데에 있다. 이번 취재에서도 대부분의 감독들이 돈에 관해서는 꿀먹은 벙어리로 일관해 어려움이 많았다.

금전형의 대표적인 선수와 사령탑은 뭐니뭐니 해도 한국형 용병의 대표격인 맥도웰과 신산(神算)이라는 칭호답게 계산이 빠른 신선우 감독. 신감독은 다양한 방식으로 맥도웰의 엄청난 금전욕을 만족시켜줬다.

용품 후원사에게 상식적으로 너무 빠르다 싶을 정도로 유니폼과 신발교체를 의뢰해 현물 이득을 안겨줬고, 여러 그룹 계열사를 설득해 베스트 플레이어식의 포상제도로 실질연봉을 높여줬다(여기까지는 합법). 급할 때는 아예 신감독 개인 돈으로 용돈을 주기까지도 했다.

이런 풍토에 젖은 맥도웰이 올시즌 빅스로 이적후 웃돈을 요구하다 위에서 언급한 임근배 코치에게 혼쭐이 나기도 했다. 광의의 금전형에는 가족 및 애인의 한국관광비 포함, 한국에서의 엔조이 비용 등이 포함되기도 한다. 신감독 뿐 아니라 많은 감독이 수시로 이 방법을 사용한다.

참고로 금전형의 파생적인 문제는 용병과 용병 사이가 틀어지는 ‘용용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99∼2000시즌 맥도웰 독주에 기분이 상한 로렌조 홀이 스스로 재계약을 포기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비밀리에 그리고 전격적으로 행하는 방법이 최대 요령이다.

▼“니가 최고야, 잘해보자” 설득형▼

이른바 립서비스(lip service). 돈 안들이고 대화로 용병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방법이다. 최종규, 유재학, 강정수, 최인선, 김동광 감독의 스타일. 문제는 97프로원년 전과자 출신이었던 동양의 토니 매디슨, ‘책으로 한권을 써도 모자란다’는 표현의 주인공 칼레이 해리스(97년 나래) 등과 같이 고집불통 꼴통에게는 소용없다는 점이다. 그 자리에서는 감동받고 알아듣는 척을 해도 돌아서면 그만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문화적 차이와 감독의 영어실력과도 민감한 관계가 있어 말처럼 그렇게 쉽지가 않다. 걸출한 실력에도 동반 퇴출된 클리프 리드, 제이슨 윌리포드의 경우처럼 설득형이 나중에는 금전형으로 전화될 가능성이 크다. 리드와 윌리포드는 98∼99시즌서 과도한 돈을 요구하다 퇴출당했다.

재미있는 것은 버나드 블런트의 경우. 한국에서 워낙에 최고로 군림했던 터에 정말로 자신이 엄청난 선수인줄 알고 착각을 했다가 낭패를 본 경우다. 97∼98시즌 창단팀 LG를 준우승으로 이끈 블런트는 다음 시즌은 98∼99시즌에도 팀을 정규리그 5위로 이끌며 불구하고 변함없는 활약을 펼쳤다. 99∼2000시즌 재계약도 당연. 블런트의 미국 결혼식에 구단 직원이 특파돼 큼직한 봉투를 놓고 올 정도로 극진했다.

문제는 세번째 시즌 개막을 앞두고 한국에 온 블런트가 갑자기 미국으로 줄행랑쳤다는 것. 자신의 기량이 워낙 대단하다고 판단, 미국서 NBA의 산하 리그격으로 생긴 USBL에 진출해 이를 바탕으로 NBA에 서겠다며 코리언 드림을 스스로 박찬 것이다.

결국 블런트는 나중에 미국서 그저그런 선수로 전락, 다시 한국행을 강력히 희망했지만 크게 당한 LG가 국제적으로 블런트의 용병생활 저지를 조치해 놔 더 이상의 ‘드림’은 없게 됐다.

▼“음…, 끙끙…” 읍소 및 화병형▼

정말 방법이 없는 경우다. 온갖 방법을 다써도 안되면 읍소하고 그래도 안되면 속으로 병들 수 밖에 없다. 대표적인 경우가 초창기 삼성을 이끌었던 최경덕 감독형. “용병 때문에 죽겠어요”라는 말을 달고 다닌 까닭에 기자들이 동정했을 정도다. 빈스 킹, 숀 이스트윅 등 한국에 와서 농구실력이 늘었다는 평을 받은 용병들을 데리고 뭔가 해보려고 했으니 속이 터질 수 밖에.

대표적인 사례는 세계기록으로 평가받는 32연패의 98∼99시즌 대구 동양. 전희철, 김병철 두 간판을 군에 보냈지만 걸출한 센터 그레그 콜버트가 새얼굴로 들어와 초반 당시 우승후보였던 대전 현대를 격파하는 등 기세를 올렸다.

하지만 몇 경기만에 콜버트가 부인이 바람이 났다면서 온갖 설득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 동양의 1년 농사가 영원히 깨지기 힘든 사상 최악의 흉년이 되고 말았다. 당시 모 프런트직원은 콜버트의 발목을 잡으며 애원까지 했다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제공:http://www.jump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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