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선더란드 (Sunderland)의 추운 겨울

  • 입력 2002년 2월 15일 18시 49분


잉글랜드 동북부에 위치한 선더란드는 정열적인 팬들로 유명한 클럽이다. 신문 가판대에서 일하는 할머니부터 유치원 교사까지 선더란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선더란드 클럽에 대단한 애착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이 다른 팀을 응원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다. 물론 조금만 더 위로 가면 선더란드의 영원한 라이벌이자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나는 뉴카슬 유나이티드 (물론 이 두 팀은 DERBY 관계다)가 있지만 이 두 팀은 맨체스터나 리버풀 처럼 같은 도시에 두 개의 거대한 클럽 (맨체스터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시티. 리버풀 - 리버풀, 에버튼)이 있는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맨체스터 시티를 응원하는 아버지가 아들의 침대 밑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셔츠를 발견하고 망연자실해 하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는다. 뉴카슬 시에 태어난 사람은 거의 모두 뉴카슬 유나이티드의 평생 팬 (뉴카슬의 팬들이나 소속팀 선수들은 자기 자신을 뉴카슬 사람이라는 Geordie라고 부른다)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뉴카슬과 마찬가지로 선더란드에서 태어난 축구 지망생들은 선더란드에서 뛰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하며 선더란드 사람들은 몇 대에 걸쳐서 Black Cats (선더란드의 애칭)를 응원해 오고 있다.

동북부에 위치한 이 두 팀의 열정적인 서포트는 관중 수에서도 나타난다. 현재 프레미어 리그에서 가장 많은 관중을 동원하는 팀은 단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평균 67,579명)이다. 그리고 2,3위를 달리고 있는 팀이 바로 뉴카슬 유나이티드 (평균 51,301명)와 선더란드 (평균 46,880명)이다. 물론 아스날, 리버풀, 리즈 같은 빅 클럽들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구장을 증축하거나 더 큰 구장으로 이전을 하면 40,000 - 50,000명의 관중은 거뜬히 동원할 것 으로 보이지만 여하튼 현재로서는 동북부 팀들이 적어도 관중 수에서는 다른 팀들을 압도하고 있다. 특히 선더란드는 지난 시즌 전 유럽 클럽 중에서 14번째로 많은 관중을 동원했다. 팀의 성적이 좋건 나쁘건 선더란드의 홈 구장인 '빛의 구장 (Stadium of Light)'은 거의 매경기 만원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열성적인 응원에도 불구하고 지난 50년간 선더란드의 성적은 그리 신통치 않았다. 물론 과거 6번의 리그 우승 (이 기록은 잉글랜드 클럽 중 6위이다)과 2번의 FA컵 우승을 자랑하지만 마지막으로 리그 우승을 차지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전인 1935-1936시즌 때이고, 마지막으로 FA컵을 우승한 것도 30여년 전인 1972-1973시즌 때이다. (이 때 선더란드는 2부 리그 소속이었다.) 지난 30여년 동안 선더란드는 옛 명성에 걸맞지 않게 2부 리그를 전전하면서 단 하나의 트로피도 가져오지 못했다.

이렇게 1부 리그 (현 프레미어 리그)와 2부 리그 (현 디비전 1)를 오락가닥하던 선더란드는 잉글랜드 대표팀 출신의 명장 피터 리드 (Peter Reid)의 세밀하고 탁월한 지도력으로 1999 - 2000 시즌 다시 프레미어 리그로 승격된다. 1995년부터 지휘봉을 잡은 리드 감독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자원과 선수층에도 불구하고 팀의 조직력을 극대화하고 또 보기에도 재미있는 축구를 하는 팀으로 변화시키는데 성공, 마침내 오랜 숙원이었던 프레미어 리그 입성을 달성한 것이다. 리드 감독의 지도력과 선수들의 해보겠다는 의지, 그리고 몇몇 알짜배기 선수들의 영입으로 선더란드는 지난 두 시즌 동안 프레미어 리그로 새로 올라온 팀 답지 않게 연속으로 7위를 기록하며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팬들과 지역 언론은 선더란드의 선전에 열광했고 피터 리드 감독을 '선더란드 역사상 가장 훌륭한 지도자'라고 칭송하며 다가오는 2001-2002 시즌에는 조금 더 좋은 성적을 거두어 UEFA CUP 티켓을 따기를 갈구한다. (선더란드 팬 생각에는 전쟁 전 당시의 리그 우승보다 현재 프레미어 리그에서 7위를 기록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냉철하기로 유명한 잉글랜드 축구 전문가들도 선더란드의 전력과 팀 분위기가 상승세를 타고 있다며 UEFA CUP 자리는 현실적으로 노려볼만 하다고 평가한다. 그 모든 것이 좋아 보였다.

하지만 2001-2002 시즌은 선더란드의 기대만큼 쉽게 풀리지 않았다. 홈에서의 부진한 성적, 득점력 빈곤,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 시즌까지 보여주었던 '재미있는 축구'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팬들과 여론의 불만은 계속 커져만 갔고 그에 비례해 팀의 성적은 더욱 악화되어 갔다. 이러한 팬들의 불만과 우려는 지난 1월 29일 약체로 평가 받는 미들스브로와의 홈 경기에서 시종일관 무기력한 플레이 끝에 1대0으로 패하면서 극에 다다랐다. 그 뒤 2월3일 벌어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4대1로 난도질을 당하면서 팬들의 불만은 분노로 바뀌게 되었다. 마침내 처음으로, 한때 평생 선더란드 감독을 할 것만 같았던 리드 감독을 경질 하라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팬들은 경기 도중 관중석에서 "리드 물러나라!!"라고 소리 질렀고 몇몇 팬들은 너무 열 받은 나머지 그들이 입고 있던 선더란드 셔츠를 리드 감독에게 던지기까지 했다. 팬들의 팀에 대한 끊임없는 '충성심'과 감독에 대한 믿음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여하튼 리드 감독은 선더란드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최고의 위기에 빠져 있다. 현재 선더란드는 위태롭게 15위를 달리고 있고 2부 리그로의 강등을 우려하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물론 아직도 많은 팬들과 클럽 관계자들은 리드 감독을 지지하고 있다. 현재 결과가 좋지 않아도 어쨌든 리드 감독은 1955년 이후 처음으로 선더란드를 1부 리그 (현 프레미어 리그) 10위권 내로 끌어올린 감독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선더란드에서 리드 감독의 지도력과 영향력은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13경기를 남겨둔 현재 선더란드가 또다시 10위권 내의 성적을 거둘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하지만 이번 시즌 영입한 선수들의 잇따른 실패로 인해 리드 감독에 대한 팬들의 불만이 증폭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주 수비 안정을 위해 150만 파운드를 주고 긴급 영입한 스웨덴 대표출신의 베테랑 수비수 뷰요클란드 (Joachim Bjorkland)도 팬들의 불만을 잠재우기에는 충분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시즌 선더란드에서 새로 영입한 선수들은 대부분 '실패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먼저 선더란드는 한 우루과이 에이전트의 추천을 받아 온두라스 출신의 공격수 누네즈 (Milton 'Tyson' Nunez)를 영입했다. (110만 파운드 지불) 선더란드 관계자들은 누네즈가 우루과이 최고의 명문 클럽인 나시오날 (Nacional) 소속으로 알고 영입했지만 실제로 우루과이 3부 리그 팀인 Uruguay Montevideo 소속이었다는 것을 영입 후에야 알게 되었다. 검증되지 않은, 그것도 3부 리그 소속의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공돈을 날려버린 것이다. 비록 법정 소송까지 가는 끝에 보상은 받았지만 리드 감독과 선더란드 관계자들에게는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여름에 영입한 두 명의 선수도 높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떠오르는 유망주라고 평가 받은 메디나 (Nicolas Medina)를 Argentinos Juniors에서 350만 파운드를 주고 영입했지만 그는 아직 한 게임도 뛰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 국가대표 출신의 라슬란데스 (Lilian Laslandes)를 360만 파운드로 영입했지만 단 14게임을 뛰고 결국 독일 분데스리가 클럽인 콜론 (Cologn)으로 임대되어 갔다. 결국 리드는 이번 시즌 선수 영입에 710만 파운드라는 적지 않은 돈을 낭비한 것이다. 이와 대조로 리드 감독은 지난 2-3년 간 팀의 주축 멤버들을 다른 팀으로 이적 시키는 실수를 범했다. 메이킨 (Chris Makin), 허치슨 (Don Hutchison), 섬머비 (Nick Summerbee) 그리고 존스턴 (Allan Johnston) 등 지난 2시즌 동안 선더란드 돌풍의 주역들이 차례대로 팀을 떠났고 이들의 공백을 메우지 못한 것이 이번 시즌 부진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공수에서 엄청난 운동량을 보이며 미드필드를 조율했던 스코틀랜드 대표팀 출신 허치슨의 이적은 미드필드에 커다란 구멍을 남겼다.

현재 선더란드 팬들이 원하는 것은 팀의 주 공격수인 필립스 (Kevin Phillips)와 파트너를 이룰 검증 받은 공격수와 허치슨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미드필드 선수의 영입이다. 그 이유는 이번 시즌 현재 더비와 레스터 시티만이 선더란드보다 적은 골을 넣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선더란드는 25게임에서 20골밖에 넣지 못할 정도로 득점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필립스의 공격 파트너인 아일랜드 대표 출신의 퀸 (Niall Quinn)은 고질적인 부상에 시달리고 있고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고려할 만큼 노장이다. (현재 퀸은 36살이다). 따라서 선더란드는 시즌 도중 '질 좋은' 공격수 영입을 위해 노력했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았다. 리드 감독은 발렌시아 소속의 노르웨이 장신 공격수 카루 (John Carew) 영입에 관심을 보였지만 카루는 좀더 빅 클럽으로의 이적을 고려하고 있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소속 요크 (Dwight Yorke)의 영입설도 있었지만 과도한 이적료를 감당할 수 없어서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가장 최근에는 샬케 04 소속의 음펜자 (Emile Mpenza)에게 접근했지만 역시 실패하고 말았다. 또 한 번 선더란드는 굵직한 선수 영입에 실패하고 만 것이다.

이러한 잇따른 선수 영입의 실패는 팬들을 더욱 짜증나게 하고 있다. 물론 팬들은 선더란드의 프레미어 리그 우승을 원할 만큼 비현실적이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안정적인 전력을 구축하여 프레미어 리그 중상위 자리를 유지하고 조금 더 욕심을 부려 UEFA컵 출전 티켓을 따내길 바라는 것이다. 이런 팬들의 바람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선더란드는 5년 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2부 리그의 중위권 팀에서 안정적인 프레미어 팀으로 성장을 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지난 2시즌 연속 7위를 차지할 만큼 발전한 것이다. 팬들이 이번 시즌에 조금 더 나은 성적을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현재의 선더란드는 그러한 팬들의 기대를 충족 시키지 못하고 있고 한 때 상당히 공격적이고 많은 골을 넣었던 팀이 점점 2부 리그로 추락했던 1996 - 1997 시즌의 팀과 닮아가는 데서 불만과 우려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FA 컵과 리그 컵에서의 조기 탈락도 이러한 분위기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두 대회 모두 2부 리그 팀에게 패해 탈락했다) 팬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라이벌 뉴카슬 유나이티드의 올 시즌 놀라운 선전 때문이기도 하다. 잉글랜드 최고의 덕장 보비 롭슨의 지휘 아래 뉴카슬은 올시즌 탄탄한 조직력과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하며 많은 중립 팬들의 찬사 속에 2위를 달리고 있다. 선더란드의 팬 입장에선 자기 팀의 부진과 동시에 영원한 더비 팀의 선전을 보고 속이 쓰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필자의 생각에 팬들이 불만스러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선더란드의 소극적인 플레이 스타일 때문이라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형적인 4-4-2 포메이션을 구사하는 선더란드는 팀의 장신 공격수 퀸이 뛸 때는 그에게 너무 의존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즉 미들에서의 플레이가 없이 퀸을 향한 롱 볼 플레이를 주 전술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퀸이 그 볼을 받아 혼자 해결하던지 아니면 파트너인 필립스에게 골 찬스를 제공해주길 바라는 단순한 전법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전술은 허치슨의 이적 후 더욱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 퀸이 출전하지 않을 때는 미들을 두텁게 하고 수비에 치중하는 4-5-1 전술을 택하고 있다. 자연히 원톱으로 나서는 필립스는 좋은 골 찬스를 제공받지 못하고 공격 옵션도 그만큼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든 '빛의 구장'은 현재 불안정한 상태이다. 일부에서는 '빛의 구장'이 아니라 '어둠의 구장'이라고 까지 말하고 있다. 열성적인 지지만큼이나 더욱 많은 것을 바라는 선더란드 팬들의 요구 앞에 리드 감독은 그 어느 때보다 압력을 받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선더란드 구단에서 리드 감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해임은 없을 거라고 발표했다는 사실이다. 머레이 구단주는 지금까지 선더란드에서 이룩한 리드의 업적은 대단한 것이고 따라서 팬들에게 리드 감독을 존중해 줄 것을 당부했다. 물론 팬들도 리드의 업적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팬들은 리드가 선더란드에서 자기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할 수 있는데 까지 팀을 끌어 올렸다고 생각한다. 팀이 한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제 새로운 피, 즉 새로운 감독을 영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또한 리드 감독이 최근 프레미어 리그 40경기 중 10승만을 챙긴 선더란드의 부진한 성적에 대한 책임을 완전히 회피할 수 없다는 것이 팬들의 생각이다.

리드 감독이 선더란드에서 이룩한 업적을 고려할 때, 현재 그가 받는 비난이 가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리드 감독이 감수하고 있는 비난이 가혹한지의 여부를 떠나 다음 한 팬의 말이 어쩌면 상당히 많은 선더란드 팬의 마음을 대변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리드 감독이 우리 선더란드를 위해 이룩한 많은 업적에 우리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더 많은 것을 원한다. 상승세를 타고 있던 팀에게 더욱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바닥이 다 그런 거 아닌가"

* 위 글에 언급된 기록은 2002.2.8일까지 유효함.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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