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외국인 CEO "한국에서는 한국 법 따라야죠"

  • 입력 2002년 1월 17일 18시 20분


르노삼성자동차 제롬 스톨 사장 방에는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오전 한시간반 동안 ‘출입 금지’ 팻말이 붙는다. 그가 한국어 개인 교습을 받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결재를 받으려는 임직원이 줄지어 기다려도 이 시간만은 안 된다. 스톨 사장은 2000년 9월 취임 후 한 주도 거르지 않고 한국어 교습을 받아 왔다.

소설가 이청준씨의 ‘당신들의 천국’ 등 프랑스어로 번역된 한국 소설을 탐독하는가 하면 2000년 12월 르노삼성차 출범 100일 기념행사에는 한복을 차려입고 나왔다.

한국에서 영업하는 외국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현지화(한국화)’를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있다. 과거 외국인 CEO들이 한두달 공부하다 “도저히 깨우칠 수 없는 언어”라며 포기하던 한국어를 파고드는가 하면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다. 일본 닛산자동차의 재건을 이끌고 있는 카를로스 공 사장의 성공에도 ‘일본화 노력’이 큰 영향을 미쳤다.

▽문화를 알면 시장이 보인다〓집들이, 경조사 챙기기, 전통음식 만들기 등 한국문화를 알기 위해 애쓰는 외국 CEO가 많다.

영국계 담배회사인 BAT코리아의 존 테일러 사장은 한국의 경조사는 정(情)을 나누는 자리라는 걸 알면서부터 직원 경조사를 빠짐없이 챙긴다. 매달 한차례 이상은 한국식당에 직원들을 모아놓고 소주파티를 열며 애로사항을 듣기도 한다. 테일러 사장은 “직원들이 돌리는 술잔을 다 받아마시느라 다음날 고생을 좀 하지만 애정이 담긴 술이라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아그파코리아의 마티아스 아이혼 사장은 한국 요리를 만드는 것을 즐긴다. 얼마 전에는 부인과 함께 김치담그기에 도전했다. 시장에 나가 요리책을 보며 재료를 사느라 고생을 했지만 직접 담근 김치를 먹는 일이 큰 기쁨이다.

알리안츠제일생명 미셸 캉페아뉘 사장은 한국 역사와 문화에 대한 책을 탐독하는 게 취미다. 최근에는 유홍준씨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영역본을 읽었다. 틈만 나면 서울 인사동을 찾아 한국의 전통예술품을 보러 다니고 주말에는 한국 각지를 여행한다.

한국 프록터 앤드 갬블(P&G)의 앨 라즈와니 사장은 부인과 함께 전국을 여행하며 한국의 전통음식을 맛보는 일로 대부분의 주말을 보낸다. 닭갈비를 좋아해 일주일에 한 두 번씩 가는 단골식당이 있을 정도이며 보신탕도 먹는다.

▽언어를 알아야 사람을 안다〓독일의 미디어그룹인 베텔스만코리아의 타힐 후세인 사장의 한국어 실력은 수준급. 직원들과 한국어로 의사소통하는 데 별 어려움을 느끼지 못할 정도다.

베텔스만이 1999년 한국에 진출하면서 취임한 후세인 사장은 최근까지 일주일에 두 차례 한국어 개인교습을 받았다. 얼마 전부터는 교습 시간을 일주일에 한 번으로 줄이고 한국 TV와 영화를 보고 있다. 그는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국의 문화와 한국 사람을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됐다”며 “진정한 현지화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고 말했다.

볼보건설기계코리아 에릭 닐슨 사장의 한국어 배우기 열정도 남다르다. 회사에서 일주일에 두차례씩 실시하는 한국어수업에 꼬박 참가해 배운 실력으로 외부손님에게 한국어로 인사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외국기업의 홍보를 대행하는 뉴스커뮤니케이션스 어은하 과장은 “과거 외국계 CEO들은 ‘한국에서는 조용히 사업하는 게 최고’라며 대부분 소극적인 경영을 폈지만 요즘은 한국을 알려는 외국인 CEO가 부쩍 늘어났다”고 말했다.

▽닛산 CEO의 ‘현지화’ 성공사례〓과감한 경영혁신과 아침7시부터 밤11시까지 일하는 열정으로 ‘닛산의 맥아더’ ‘세븐 일레븐’이란 별명을 얻은 일본 닛산의 카를로스 공 사장. 프랑스 르노자동차 수석부사장 출신으로 닛산 CEO 취임후 국제적으로 유명인사가 된 그의 ‘성공비결’중 하나가 철저한 현지화였다.

99년10월 도쿄에서 열린 도시대항 야구시합에 닛산이 출전했을 때의 에피소드. 시합후 영어로 연설하기로 돼 있던 그는 여비서에게 “직원들에게 일본어로 말하고 싶다. 로마자로 적어주지 않겠느냐”고 부탁했다 통역이 적어준 메모지를 보며 더듬거리는 일본어로 “닛산의 시합을 보게 돼 기뻤다. 여러분의 응원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고 말해 갈채를 받았다.

같은 달 도쿄 모터쇼에서도 일본어로 연설한 뒤 기자석 맨앞에 앉아 닛산차 소개에 귀를 기울였다. 통역이 그에게 영어와 프랑스어 통역용 리시버를 건네주자 손을 내저으며 거절했다. ‘일본어를 아는 외국인 경영자’라는 모습을 일본사회에 보여줌으로써 호감을 얻으려는 ‘연출’이었다.

99년4월 일본에 왔을 때 그가 처음 한 말은 “나는 르노를 위해서가 아니라 닛산을 위해 왔다”였다. 취임초 일에 파묻혀 사는 중에도 매일 일본어를 배웠고 철저히 ‘닛산맨’이 됐다. 르노의 닛산 인수에 반신반의하던 일본사회는 그의 현지화노력과 경영혁신에 차츰 박수를 보냈고 일본에서 닛산의 인기는 하루가 다르게 높아졌다.

권순활기자shkwon@donga.com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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