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1일 중국 베이징(北京) 동부 차오양(朝陽)구 진퉁둥(金桐東)로 횡단보도 앞 인도.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대형스크린이 행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여기엔 횡단보도의 폐쇄회로(CC)TV 감시카메라가 포착한 무단횡단 모습이 공개적으로 드러났다. 사분할 된 영상에는 1∼2시간 전 무단횡단을 한 사람들의 행적이 고스란히 담겼다. 특히 화면 오른쪽 하단에는 무단횡단자의 얼굴을 크게 확대해 한눈에도 누구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기자가 해당 도로를 찾았던 오전 9시경에는 이날 오전 6∼7시경 감시 카메라에 포착된 무단횡단자들의 모습이 스크린에 노출됐다. 이날 오전 6시 54분 40초에 무단횡단을 했던 백발의 남성은 파란색 공유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783’이라는 식별번호가 붙어 있다. ‘783’이 지금까지 무단횡단을 한 총 횟수는 두 차례로 나타났다. 안면인식 결과로 특정인의 무단횡단 행적을 추적했다는 뜻이다.
이날 오전 6시 38분 33초에 무단횡단을 하다가 포착된 남성은 안경을 쓴 외국인이었다. 그의 식별번호는 ‘303’. 무단횡단 횟수는 총 8회였다. 중국에선 외국인도 예외 없이 안면인식을 통한 추적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 무단횡단 횟수도 기록한다
일부 시민은 화면을 손가락질하며 “저 사람이 무단횡단 했네”라고 말했다. 신기한 듯 사진을 찍는 이도 있었다. 안면인식 기능을 갖춘 감시 카메라에 대한 의견은 엇갈렸다.
“쓸모가 많아요. 이 화면에 나오고 싶지 않다면 녹색 불에 길을 건너야 할 겁니다.” 돤샤오훙(段小紅·32·여) 씨는 “안면인식 화면 설치 뒤 무단횡단이 좀 줄었다”고 말했다. 그에게 ‘일상생활 속 안면인식 기술로 인해 프라이버시 침해는 걱정이 안 되냐?’고 묻자 “얼굴이 화면에 나오니 당연히 개인정보가 노출될 것이다. 하지만 보안검사처럼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왕팡(王芳·35·여) 씨는 “안면인식으로 무단횡단을 줄이려는 건 수동적인 방법”이라며 반대했다. 그는 “교통규칙을 준수하려는 사람에게는 필요 없고 굳이 지키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자신이 촬영되는 줄 모르고 찍힌 뒤 이렇게 큰 화면에 얼굴이 나온다. 프라이버시 보호가 안 된다”고 말했다.
이날 찾은 베이징 서부 시청(西城)구의 한 아파트 단지 내 쓰레기 분리수거함에도 안면인식 카메라가 설치돼 있었다. 얼굴 모습을 비롯해 개인정보를 등록한 후 분리수거함에 접근하면 쓰레기 투입구가 자동으로 열린다. 주민들이 안면인식 분리수거함에 쓰레기를 버리면 포인트를 적립해 달걀 소금 등으로 바꿀 수 있다.
베이징에선 현재 쓰레기 분리수거가 의무는 아니다. 그래서인지 함부로 버린 쓰레기로 주변이 지저분한 곳이 많다. 하지만 올해 7월 안면인식 기술을 도입한 이곳은 매우 깔끔했다. 주민들은 반겼다. 왕메이자오(王美嬌·70·여) 씨는 ‘개인정보 유출 걱정이 없느냐’는 질문에 “우린 폭로를 걱정하는 범죄인이 아니다”며 “어디를 가든 얼굴만 있으면 된다. 두려울 게 뭐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이날 다시 베이징 서남쪽 펑타이(豐臺)구의 한 공공임대 아파트 단지로 향했다. 아파트 출입문에 안면인식 시스템이 있었다. 미리 등록한 사람에게만 녹색 등이 켜지며 문이 열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접근하면 빨간색 등이 켜진다. 주민들은 출입문에 서기 전 선글라스를 벗는 등 이미 적응한 모습이었다. 리빙(李冰·60·여) 씨는 “첨단과학 기술 문제는 잘 모르지만 국가이익 보호 관점에서는 안면인식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임대가 금지된 공공임대주택을 몰래 재임대한 얌체들도 안면인식 기술로 잡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베이징시는 이달 말까지 시내 공공임대 아파트 59곳 전부에 안면인식 기술을 적용한 출입문을 설치할 예정이다.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달 25일 찾은 중국 최고 대학 베이징대의 출입문에도 안면인식 시스템이 설치돼 있었다. 안면인식으로 출입문을 통과한 이 대학 학생 쑨(孫)모 씨(24·여)는 “편리하다”면서도 “개인정보를 학교가 아닌 다른 기업이 수집해 이용하는 건 걱정된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안면인식 기술의 프라이버시 침해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많다. 그런 가운데 안면인식 기술은 어느새 중국인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들어왔다.
지난달 말 베이징 남부에 문을 연 세계 최대 다싱(大興)국제공항도 안면인식 기술을 도입해 승객들의 신분 확인 과정을 간소화했다. 지난달 15일부터 중국 공항 200여 곳에서 승객들은 신분증 없이 안면인식만으로 체크인할 수 있다. 광둥(廣東)성 선전(深圳)과 광저우(廣州)에서는 지하철 개찰에 안면인식 시스템을 도입했다. 영국 소비자 보안업체 컴페리테크는 “2020년까지 중국에는 2명당 1개에 이르는 감시카메라가 설치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 “기술의 진보, 교육의 퇴보”
대학 강의실에까지 손을 뻗친 안면인식 기술은 결국 논란을 크게 일으키기도 했다.
장쑤(江蘇)성 난징(南京) 중국약과대는 지난달 처음으로 대학 강의실에 안면인식 시스템을 시범 도입했다. 도서정보센터 쉬젠전(許建眞) 주임은 “출석 체크는 물론이고 학생이 제대로 수업을 듣는지, 머리를 드는지 숙이는지,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지, 눈 감고 조는지 모두 이 시스템의 법안(法眼·모든 법을 관찰하는 눈)을 피해 갈 수 없다”고 자신했다. 일부 학생이 불만의 뜻을 나타내자 “안면인식 시스템을 통해 공부하기를 촉구하는 것이 불만인가? (그러고도) 너희들이 학생인가”라고 비난했다.
이는 학생들의 큰 반발을 불러왔다. 학생들은 “프라이버시와 존엄에 대한 침해”라고 비판했다.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가장 아름다워야 할 대학생활이 지옥으로 변했다”는 노골적인 항의도 올라왔다. 그러자 중국 정부와 매체들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중국 교육부가 “안면인식 기술을 강의실에 들여온 것은 데이터 안전과 개인 프라이버시 측면에서 모두 문제가 있다”며 “학생에 대한 개인 정보 수집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관영 중국중앙(CC)TV는 온라인판 논평에서 “안면인식을 교실에 들여온 것은 기술의 진보이자 교육의 퇴화”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CCTV는 “안면인식 시스템 설치는 학생이 교사의 말을 잘 듣느냐에만 주목했다. 하지만 교실에서 잘하는 학생, 속기에 능한 학생이 아니라 독립적인 사고를 갖춘 학생을 길러내야 한다”고 꼬집었다.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를 뛰어넘어 교육 윤리 논란으로 번진 것이다.
하지만 중국약과대의 시도는 사실 중국 교육부가 장려한 ‘스마트 캠퍼스’ 구축 사업의 일부였다. 중국 교육부는 지난해 “수업 과정 모니터링, 분석, 학생 지도에 인공지능(AI) 기술을 도입할 것”을 권장했다. 산시(陝西)성 시안(西安)대에도 안면인식 수업 태도 감시 시스템이 도입됐다. 구이저우(貴州)성 런화이(仁懷)시의 한 중학교는 학생들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스마트 교복’을 착용했을 정도다.
논란 속에서도 중국의 안면인식 기술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베이징의 과학기술 전문가는 “중국 정부가 14억 인구를 관리, 통제하고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AI 안면인식 기술 도입을 장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은 개인정보 유출이나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문제의식도 아직 그리 높지 않다. 베이징 시청구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허샤오아이(何小愛·34·여) 씨는 “인터넷, 스마트폰에서 이미 내 개인정보들이 노출된 걸 알지만 그렇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중국 과학기술계는 정부 정책에 따라 제품을 개발할 생각을 하지 프라이버시에는 큰 관심이 없다”고도 지적했다.
중국인들의 삶 깊숙한 곳으로 별다른 거부감 없이 녹아든 AI 안면인식 기술. 많은 편리를 가져다주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디지털 레닌주의(권력을 독점한 소수가 AI와 빅데이터를 이용해 사회주의의 비효율성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의 최전선이라는 우려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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