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한의 전쟁史]〈47〉자멸하는 지휘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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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제9편 행군편에서 손자는 지휘관의 통솔법에 대해 중요한 가르침을 남겼다. “지휘관이 처음에는 사졸들을 난폭하게 다뤄 놓고는 나중에 그들을 두려워해 달래는 것은 가장 잘못된 통솔 방법이다.”

이 가르침을 이렇게 이해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지휘관이 처음에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출발이 잘못됐다고 해도 리더는 초지일관 소신껏 지속적으로 밀고 나가야 성과를 이룰 수 있다.”

이건 심각한 ‘아전인수’격 해석이다. 지휘관이 처음에 사졸을 난폭하게 다룬다는 말은 억지 트집을 잡거나 위압으로 병사들을 휘어잡으려는 행위를 말한다. 병사들이 처음에는 겁을 먹고 복종하는 것처럼 보이니 지휘관은 의기양양해진다. 그러나 이런 방식이 지속되면 병사들이 반발하고 불만이 폭발한다. 그러면 지휘관은 겁을 먹거나 또는 이때까지도 병사들을 만만하게 보고 사탕발림으로 달래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추락한 권위는 회복되지 않는다. 오히려 병사들은 더 분노한다.

처음에 협박이 먹히는 광경을 보면서 지휘관은 자신이 똑똑하고 병사들을 손쉽게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부터 큰 착각이다. 사실 이런 리더는 처음부터 병사들에게 신뢰를 잃는다. 처음에 병사들이 속아 넘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병사들이 참고 지휘관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그러나 리더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 병사들을 다루기 쉽고 가지고 놀 수 있는 존재라고 가볍게 여기면 어느 날 리더십에 균열이 생긴다.

우리 사회에는 아랫사람을 윽박지르고, 꼬투리를 잡아 통제하려는 리더가 정말 흔했다. 신뢰를 얻기보다는 복종하는 모양을 원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궤변을 늘어놓는다. 그러다 안 되면 더 센 규정이나 엄포를 들먹이거나 어설픈 자선을 베푼다. 손자는 이를 최악의 리더라고 말한다. 손자는 먼저 병사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신뢰는 술수가 아니라 규칙을 지키는 태도로 얻어야 한다. 그 법을 지휘관 자신과 친밀한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졸은 심복하지 않는다.
 
임용한 역사학자
#손자병법#지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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