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버나드 몽고메리 원수는 20세기 전쟁사의 산증인이었다. 1차대전에는 소대장으로 참전해 부상을 입었다. 2차대전에서는 잘 알려졌다시피 북아프리카에서 독일의 명장 에르빈 로멜을 격파했고, 노르망디 상륙 후에는 베를린까지 진격했다. 20세기 후반부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군 사령관을 지내면서 냉전과 핵무장의 시대를 지켜보았다. 만년에 그는 세계 전쟁사를 집필했다. 전쟁사 저술은 많지만 몽고메리처럼 풍부한 실전을 경험한 장군의 저술은 거의 없다. 이 책은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그래도 ‘왜 몽고메리가 노령에 굳이 전쟁사를 저술했을까’라는 의문은 든다. 원래 몽고메리는 전사와 교육에 관심이 많은 장교였다. 대영제국의 군대에 복무해 세계 곳곳에서 근무했고 그때마다 고대 그리스의 전장부터 주요 전적지를 답사했다. 라이벌이었던 미국의 조지 패튼 장군도 수천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할 정도로 전쟁사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군인이었지만, 아메리카 제국을 이루기 전의 미군에 복무했던 탓에 몽고메리처럼 세계를 돌아다니며 근무해 보지는 못했다.
그 책의 서문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한 장교가 몽고메리에게 장군님처럼 훌륭한 지휘관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몽고메리는 전쟁사를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했다. 장교는 시큰둥한 표정을 짓더니 이렇게 대꾸했다. “저는 탁상 위의 이론보다는 실전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몽고메리는 젊은 장교들과 대화할 때마다 이런 경우를 수없이 겪었던 것 같다. 그것이 비단 몽고메리만의 경험도 아니었다. 독일의 프리드리히 대제도, 프랑스 나폴레옹도 똑같은 경험을 했다. 그럴 때마다 나폴레옹과 몽고메리는 프리드리히 대제의 답변을 똑같이 되풀이했다. 그 대답은 이렇다. “우리 부대에서 전투에 60번을 참가하고 살아남은 노새가 2마리 있다. 그 노새는 지금도 여전히 노새다.”
17세기 총과 대포가 발전하면서 기존 전술이 쓸모없게 됐다. 그때 천재적 지휘관들은 로마의 고전을 연구했고, 화약이 전혀 쓰이지 않았던 로마 군대에서 근대 전술의 답을 찾았다. 이것이 인문학의 진정한 힘이자 필요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인문학을 부르짖기는 하는데, 과연 이런 체험을 하고 있는지,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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