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김화성]손님이 짜다면 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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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성 스포츠레저전문기자
김화성 스포츠레저전문기자
햐아! 아직도 이런 식당이 있었구나! 4년 전인가. 우연히 그 밥집을 발견했다. 허름한 기와지붕의 가정식백반집. 들어서자마자 방 벽에 조그마한 액자가 하나 눈에 띄었다. 거기엔 주인장의 단정한 붓글씨가 써 있었다. ‘손님이 짜다면 짜다.’

맛있었다. 정갈하고 담백했다. 반찬들이 심심하고 깊었다. 처음엔 너무 밍밍한 것 같다가도, 몇 번 씹다 보면 그윽한 맛이 우러났다. 된장으로 살짝 버무린 배춧잎무침, 역시 된장으로 엷게 간을 맞춘 시래깃국, 슴슴하고 시원한 백김치, 기름이 자르르하면서도 구뜰한 묵은 지, 꼬소롬하고 담백한 굴비구이, 맛소금이나 기름을 전혀 바르지 않은 바스락 파래김, 파릇파릇 풋마늘무침, 방금 지은 고슬고슬 밥에 다문다문 검은콩….

그렇다. 사람의 입맛은 백이면 백, 모두 다르다. 주인이 아무리 정성 들여 간을 맞춰도 ‘짜다!’ ‘싱겁다!’ 투덜대는 손님은 있기 마련이다. 숙수는 자기 요리에 소금 치는 손님을 보면 적잖이 자존심 상해한다. 하지만 ‘음식 간 맞추는 것’에 무슨 정답이 있을까.

짠 것은 사람의 맥을 뛰게 한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것은 순전히 염분 부족 탓이다. 단것은 살을 찌우고, 신 것은 뼈를 기른다. 한여름 땀을 많이 흘리면, 맥이 축 처진다. 몸에서 짠 기운이 너무 많이 빠져나간 탓이다. 소금 섭취가 부족했던 에스키모 사람들은 오래 살지 못했다.

음식은 짤수록 입맛이 당긴다. 짭짤한 맛은 중독성의 마력이 강하다. 음식점 요리는 대체로 짜다. 싱거우면 매출이 줄어든다. 간간해야 잘 팔린다. 소금은 금보다 소중하다. 하지만 너무 많이 먹으면 독(毒)이다. 맥박이 널뛰듯 뛰게 된다. 신장이 망가지고, 혈압이 불끈 솟는다. 밤에 짭조름한 라면을 먹으면, 다음 날 아침 얼굴이 붓는다. 바로 신장에 부담이 갔다는 증거다.

2011년 한국인 하루평균 나트륨 섭취량은 무려 4791mg(12g=약 2.4티스푼)이나 된다. 세계보건기구(WHO) 하루권장량 ‘2000mg 이하(약 5g=1티스푼)’보다 훨씬 많다. 30, 40대 한국 남성 직장인은 무려 6800mg에 이른다. 뻔하다. 아침은 굶기 일쑤고, 점심은 사먹고, 저녁은 대부분 술자리를 갖기 때문이다. 한국 월급쟁이들을 키운 건, 8할이 ‘소주와 삼겹살’인 것이다.

사람은 힘들고 짜증 나면, 먹는 것도 짜고 매워진다. 머리에 쥐날 때마다 술도 독주를 퍼 붓는다. 인간들의 염분 섭취량은 산짐승에 비하면 엄청나다. 짐승들은 풀, 나뭇잎 등 자연에 들어 있는 나트륨만 섭취해도 충분하다. 좀 부족하다 싶으면 본능적으로 짭조름한 나무열매나 껍질 등을 찾아 먹는다.

붉나무는 ‘소금나무’라 불린다. 주저리 달린 열매엔 하얀 소금가루 같은 것이 엉겨 있다. 맛을 보면 시큼하면서도 짭짤하다. 옛 두메산골에선 그 열매와 가지의 짠맛을 우려내 두부의 간수로 썼을 정도다. 고라니, 사슴, 멧돼지들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그 나무 주위에 몰려든다.

지난달 오랜만에 그 가정식백반집을 찾았다. 아뿔싸! 한옥 민박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허망했다. 새 주인은 ‘그분들은 어디 시골에 내려가 사실 것 같더라’고 귀띔했다. 망연자실! 이제 입맛이 느끼하고 탑탑할 땐 어디를 가야 하나. 또 한 세계가 사라져버렸다.

그분들은 ‘음식의 간을 된장, 간장, 고추장으로만 맞춘다’고 했었다. ‘조미료는 당최 닝닝해서 치지 않는다’고 했었다. “허허, 늙으니 도무지 혀의 맛이 닳아서, 간 맞추기가 힘들어요!” 지난번 갔을 때 그분들의 푸념이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

문득 돌아가신 팔순 어머님이 떠올랐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던 그분의 음식. 하지만 언젠가부터 노모의 요리가 혀가 저리도록 짜졌다. 노모는 아들 밥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며 “간이 맞느냐?”고 몇 번이나 물었다. 그때마다 가슴에 돌멩이가 걸렸다. 질퍽한 밥덩이가 몇 번이나 목울대에 걸렸다.

그렇다. 짠맛은 서정주 시인의 노래처럼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하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면 된다.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그것도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아련해야 한다. 그게 어디 쉬운가. 그래서 그저 ‘손님이 짜다면 짠 것’이다. 아삭아삭! 봄의 풋것들이 우우우 연초록 싹을 들이밀고 있다. 쌈밥이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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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성 스포츠레저전문기자 mars@donga.com
#가정식백반#소금#나트륨#조미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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