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가슴속 글과 그림]듣는 그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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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뒤피의 바이올린이 있는 정물(1952년).
라울 뒤피의 바이올린이 있는 정물(1952년).
대다수의 사람이 그림은 눈으로 보고 음악은 귀로 듣는다. 그런데 공감각형 예술가들은 그림에서 음악소리를 듣거나 음악에서 색채나 형태를 보기도 한다.

프랑스 화가 라울 뒤피는 회화와 음악을 융합한 대표적 예술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 정물화에는 청각을 시각화한 뒤피 화풍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탁자 위에 놓인 바이올린 주위를 흰색이 후광처럼 빛을 발산하고 빨간색 벽지를 수놓은 아라베스크 꽃문양은 감미로운 선율처럼 공기 속으로 퍼져나간다. 실내를 장식한 화사한 정물화에서도 음악적인 리듬감이 느껴진다.

뒤피는 스케치풍의 간결하고 자유로운 필선, 리드미컬한 붓질, 화려하고 강렬한 색채의 조화로 보는 음악을 창조한 것이다. 뒤피의 그림은 대중에게 무척 인기가 높다. 그림 감상과 더불어 감미로운 음악도 감상하는 기쁨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뒤피는 ‘삶은 즐거운 음악처럼’이라는 인생관을 갖고 있었다. 삶의 고통이나 사회 비리, 인간의 잔혹함을 고발하는 어두운 주제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음악회, 사교계 축제, 요트 경기장 같은 삶의 양지만을 주제로 선택해 생의 환희를 노래했다. 심지어 만성다발성 관절염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통을 겪었지만 인생은 아름답다는 긍정 마인드를 잃지 않았다.

윌리엄 스타이런의 소설 ‘소피의 선택’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하루는 예후디 메뉴인이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는데 어찌나 격정적이면서 감미롭게 연주하는지 놀랍게도 평온과 위안을 받는 기분이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아직도 살 가치가 있구나. 나도 산산조각난 인생의 파편을 긁어모아 다시 새로운 나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오겠구나’라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우리의 인생은 비상등을 켜고 달리는 구급차와 같다. 뒤피의 듣는 그림은 예술이 삶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믿음을 갖게 한다.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 협회장
#라울 뒤피#바이올린이 있는 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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