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아랫돌 빼서 다시 아랫돌 괴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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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벨기에전을 끝마친 후 16강행 좌절에 허탈해 중계를 잇지 못하고 침묵하는 이영표 전 축구 국가대표. 그는 통찰력 있는 분석과 예측으로 ‘초롱도사’ 등의 별명을 얻었다. KBS TV 화면 캡처
한국-벨기에전을 끝마친 후 16강행 좌절에 허탈해 중계를 잇지 못하고 침묵하는 이영표 전 축구 국가대표. 그는 통찰력 있는 분석과 예측으로 ‘초롱도사’ 등의 별명을 얻었다. KBS TV 화면 캡처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또 다른 화제의 중심에 이영표 KBS 해설위원이 있었습니다. 선수 시절부터 영리한 플레이를 펼쳐 ‘초롱이’라 불렸던 그의 실력은 해설 무대에서도 발휘됐습니다. ‘무적함대’ 스페인의 몰락, 러시아전 이근호 선수의 선제골 등 예상이 줄줄이 적중하면서 대중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습니다. 4년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때 족집게로 화제가 됐던 문어 파울과 비교되면서 그의 별명은 초롱도사, 이영표라다무스 등으로 바뀌었습니다.

그중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이 위원의 일침이었습니다. 지난달 27일(한국 시간) 벨기에전에서 패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1무 2패의 성적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면서 일찌감치 대회를 마무리했습니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고 아쉬운 마음에 고개를 숙이는 대표팀 선수들을 향해 그들의 선배인 이 위원은 날 선 일침을 가했습니다.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월드컵은 증명하는 자리예요.”

아쉬운 성적을 거둔 후배들에게 이 위원은 매섭게 지적했습니다. 사실 그동안 국가대표팀 경기의 해설은 팔이 안으로 굽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과는 아쉽지만 그동안 우리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는 식이었죠. 하지만 이런 진부한 해설 대신에 “누군가가 저에게 이번 대표팀이 실패했느냐고 묻는다면 실패가 맞습니다”라고 가감 없이 말하는 이 위원의 모습은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새로웠습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간에서의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한 누리꾼은 “누구 하나 이런 이야기해줘서 다행”이라며 이 위원의 이야기를 지지했습니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이영표만 능력을 증명했다”는 냉소 섞인 댓글도 보였습니다. “월드컵은 경험 쌓으러 나오는 무대가 아니고 최고의 성적을 거둬야 하는 대회”라며 이 위원과 비슷한 이야기를 한 대표팀 골키퍼 김승규 선수의 인터뷰 영상도 덩달아 화제가 됐습니다.

이 위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불현듯 박근혜 정부의 2기 내각 개편 과정이 떠올랐습니다. 지난달 지명된 국무총리 및 8개 부처 장관 후보자들은 인사검증 과정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과거 교회 강연에서 “일제 강점과 남북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발언한 내용 등이 논란이 돼 자진사퇴했습니다. 나라의 교육정책을 이끌어야 하는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여전히 논문 표절, 제자 논문 실적 가로채기 등 각종 의혹에 휩싸여 있습니다. 이 밖에도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의혹들이 쏟아져 나오다 보니 후보자들이 ‘자격’을 제대로 증명하려고 하는지 의심스럽습니다. 혹시 인사검증 과정을 그저 ‘경험’하기 위해 나온 건 아닐까 하는 상상마저 해 봅니다.

내각 개편에 대한 불만이 쌓이는 와중에 마침표를 찍은 건 정홍원 총리 유임 조치였습니다. 일찍이 세월호 참사 초동 대응 및 수습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정 총리를 대신해 두 명의 총리 후보자를 지명했다 인사검증의 벽을 넘지 못하자 결국 유임이라는 카드를 꺼내 든 것입니다.

신상털기식, 여론재판식 검증이 반복돼 총리를 유임시킬 수밖에 없었다는 대통령의 해명에도 SNS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많은 누리꾼이 코미디, 자충수 등을 거론하며 이 선택을 비판했습니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려던 정부의 계획은 아랫돌을 뺐다가 허둥지둥하더니만 곧 다시 원래 자리로 괴어놓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한번 균형이 무너진 돌 더미가 다시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다는 걸 모를 리 없건만 말이죠.

이영표 위원은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선 “K리그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매번 월드컵에만 맞춰 임기응변식으로 준비를 해서는 근본적인 성장을 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일 겁니다. 저는 정부가 이 위원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랍니다. 4년마다 돌아오는 월드컵에 비하면 채 4년도 남지 않은 임기는 턱없이 짧습니다.

강홍구 사회부 기자 wind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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