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황태호]전현희 vs 신연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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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호 사회부 기자
황태호 사회부 기자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구에서는 ‘못골 한옥 어린이도서관’ 개관식이 열렸다. 개관식에 참석한 신연희 강남구청장(자유한국당)과 전현희 민주당 의원(강남을)이 간접적으로 충돌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마이크를 쥔 전 의원은 도서관 건립을 위해 자신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강남구 소속 사회자가 “의원님, 의원님” 하며 발언을 제지했다. 전 의원은 끝까지 축사를 했고 그 와중에 “왜 발언을 막느냐”는 전 의원 지지자들과 구청 직원들 사이에 몸싸움도 벌어졌다.

강남구 관계자는 “현장에 어린이들이 많고 날씨가 추워 축사 등은 최대한 짧게 하라고 사회자에게 안내를 요청했다. 강남구 주민 행사인데 전 의원 지지자들이 ‘전현희’를 연호하는 등 정치행사로 만들어버렸다”고 말했다. 전 의원 측은 “엮이고 싶지 않다”고만 밝혔다.

전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를 염두에 두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선을 노리는 신 구청장은 19대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신 구청장 측으로서는 전 의원이 공을 가로채려고 한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도서관이 앞으로 잘 운영되도록 하자는 ‘달’은 저기 떠있는데 두 사람은 ‘손가락’만 가지고 소동을 벌인 셈이다.


강남을 대표하는 두 여성 정치인의 충돌은 내년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공식 선거기간도 아니지만 벌써부터 선거 열기가 감지된다. 출마가 예상되거나 거론되는 이들이 벌이는 각종 행사를 통해서다. 선출직 공무원은 선거일 90일 전부터는 출판기념회나 의정보고회를 열 수 없도록 돼있어 연말과 연초가 절정이다.

강남구 경우처럼 기초단체의 각종 시설 개관식은 공교롭게도 선거를 앞두고 몰린다. 지난 한 달 동안 서울에서만 도서관(마포구 강남구), 사회복지관(노원구), 체육시설(중구), 청소년시설(도봉구 용산구), 사료관(강동구)이 문을 열었다. 개관식 주관은 해당 구청이지만 현 구청장의 치적을 알리기에 제격이다. ‘뜻있는’ 해당 지역구 정치인도 꼭 참석한다.

가장 인기 있는 건 출판기념회다. 대중 인지도가 높지 않은 기초단체장이나 지방의회 의원들이 많이 활용한다. 서울시만 보더라도 김수영 양천구청장, 유덕열 동대문구청장 등 구청장과 양준욱 서울시의회 의장, 조규영 부의장을 비롯해 김선갑 김창수 박준희 성백진 이정훈 시의원이 출판기념회를 했다. 대부분 지방자치단체장 입성이나 재선, 3선을 노린다.

“활동성과를 유권자에게 알리고 제언을 전하기 위한 것”이라며 솔직히 누가 썼는지 확실치 않은 책을 홍보한다. 하지만 사실상 선거운동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선거자금을 모으는 수단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소속 정당 대표나 지역구 국회의원, 장관 등을 초청해 세(勢)를 과시한다. 직접 오지 못한다면 영상축사라도 받아낸다. 같은 당 동료의 출판기념회에 서로 참석해주는 ‘품앗이’는 기본이다.

지방의원이나 기초단체장뿐만 아니다. 광역단체장, 특히 서울시장을 노리는 국회의원들은 ‘구태의연한’ 출판기념회보다 토크쇼나 새로운 형식의 보고회를 선호한다. 책을 ‘팔거나’ 이름을 알리는 것보다 정책 제안에 방점을 찍는다.

그러나 형식이 내용을 앞지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볼썽사나운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겉치레를 걷어내고 핵심을 보는 것, 유권자의 몫이다.

황태호 사회부 기자 taeho@donga.com
#신연희#전현희#못골 한옥 어린이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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