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우선의 뉴스룸]내 아이를 알고 있다는 착각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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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아니, 우리 아이가 그럴 리가 없는데….”

자녀가 학교나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킨 사실을 알았을 때 대부분의 부모들은 이런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그럴 리 없다고 믿은 아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충격적인 뉴스의 주인공이 되는 요즘이다.

‘부모가 모르는 아이’가 탄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생업과 야근으로 아이들과 하루 10분 대화조차 힘든 가정이 많다. 많은 아이들이 온종일 집을 떠나 학원으로만 돈다.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스마트폰과 인터넷’이다.

요즘 초등학교 교실에 가면 스마트폰이 없는 아이를 찾기가 힘들다. 열 살이나 됐을까 싶은 앳된 아이들도 자기 손바닥보다 큰 스마트폰을 들고 수시로 온·오프라인 세계를 넘나든다. 그중에는 아이가 결코 보지 말아야 할 것도 많다. 음란물, 폭력물은 물론이고 ‘막말’과 ‘벗방’이 넘쳐나는 인터넷방송부터 정제되지 않은 표현이 범람하는 인터넷 댓글까지…. 인터넷 공간은 곳곳이 지뢰밭이다. 아이들의 유해 콘텐츠 접속을 막는 애플리케이션(앱)과 서비스가 있지만 아이들은 이를 무력화하는 기술을 부모보다 잘 알고, 또 공유한다.

인터넷의 ‘무한 확장성’은 호기심이 충만한 아이들에게 때로 치명적이다. 인터넷 공간을 유영하다 우연히 맞닥뜨린 기묘한 콘텐츠에 호기심을 느껴 링크를 계속 열어가다 보면 기괴한 세계로 끝없이 빠져들게 된다. 캐릭터 커뮤니티와 트위터 대화를 오가며 자신 안의 악마성을 키워나간 것으로 드러난 인천 초등생 살인범이 대표적인 예다.

지금 우리는 기술 진보와 시장 확대라는 목표가 만들어낸 인터넷 왕국 속 아이들의 뒷모습을 곳곳에서 본다. 인터넷 방송에서 배운 각종 혐오 발언을 죄책감 없이 동급생에게 쏟아내고, 그것이 하나의 ‘언어문화’로 자리 잡은 게 요즘 초등학교다. 중고교생들은 능수능란하게 음란물을 공유하며 왜곡된 성 인식을 키워간다. 친구를 괴롭히는 방식은 말할 수 없이 영악해졌다. ‘카톡방’에 친구를 초대한 뒤 아무 말 없이 모두 나가버리거나, 친구를 억지로 계속 초대해 욕설과 폭언을 쏟아낸다. 이른바 ‘카톡 왕따’ ‘카톡 감옥’이다.

인터넷 괴물 문화로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까지 생겨난다. 하지만 기성세대가 만든 법과 제도는 여전히 인터넷이 태어나기 전인 20여 년 전에 머물러 있다. 터치 한 번으로 손안에서 포르노가 재생되는 시대에 교육환경법은 학교 주변 200m 내에 모텔을 못 짓게 하는 데만 신경을 쓴다.

인터넷 문화를 올바로 바라보고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실질적 교육은 사실상 전무하다. 700명이 근무하는 교육부에도 인터넷 교육을 전담하는 조직은 없다. 여기에 서울시교육청은 학생들의 ‘인권’을 앞세워 앞으로 교실에서도 스마트폰 소지를 허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로써 인터넷으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지킬 사람은 부모뿐이라는 게 더욱 명확해졌다. 말간 얼굴로 저녁을 함께한 아이가 방으로 들어가 스마트폰 속 인터넷 공간에서 무엇을 보고, 누구와 얘기하는지 부모들은 바짝 안테나를 세워야 한다. 그 속의 아이는 내가 알던 아이와 사뭇 다를지도 모른다.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imsun@donga.com
#부모가 모르는 아이#인터넷 유해 콘텐츠#인터넷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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