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전에 이것만은…/서정욱]달에 가서 아름다운 지구를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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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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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이렇게 해봐야지’, ‘이런 것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은 늘 있지만 딱히 버킷리스트를 정해본 적은 없다. 나는 죽기 전에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첫째, 달에 가서 지구 보기. 하는 일이, 좋아하는 일이 그림 감상이다 보니 늘 많은 작품을 대하게 된다. 그리고 작품에 빠질 때마다 자연스레 작가에게 관심이 넘어간다. 그리고는 작품과 작가에게서 감동받을 때 나는 더욱 즐겁다.

이제 욕심을 내볼까? 신의 작품이 보고 싶다. 물론 지구의 모든 자연도 신의 작품이겠지만 지구에 있는 한 나 역시 그것의 일부일 테니 멀리 우주로 가서 감상자의 눈으로 지구를 바라보고 싶다. 지구는 파랗게 보인다는데 어떤 파랑일까? 반 고흐의 ‘밤의 카페테라스’의 파란 하늘빛보다 예쁠까? 혹시 페르메이르의 ‘우유를 따르는 여인’ 치마의 파란 빛보다 더 감동적일까?

다행히 몇몇 기업에서 우주여행 상품을 준비한다니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런데 걱정이 생기기 시작한다. 우주여행은 꽤 비쌀 텐데 얼마나 할까? 혹시 체력 문제로 못 간다면 어떡하지? 모르겠다. 일단 버킷리스트에 올려놓는다.

나는 꽃을 좋아한다. 길가에 핀 꽃을 보면 마음이 환해지고, 봄에 꽃향기 나는 골목이라도 지날 때면 내 눈은 벌써 꽃을 찾고 있다. 그래서 멀리 영국까지 가서 꽃을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난 꽃을 가꾸지 않는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와 함께 손길을 받지 못해 시들어가는 꽃을 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오렌지 나무와 이름 모를 들풀과 150종의 꽃이 있는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 갑자기 마음이 설렌다. 향기는 어떨까? 그 꽃밭에서는 어떤 옷이 어울릴까? 사실 내가 원하는 이 꽃밭을 그린 사람이 있다. 르네상스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다. 나는 그의 그림 ‘봄’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의 그림 속 빛깔은 어떤 말로도 대신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말을 만들어 냈다. 보티첼리 블루, 보티첼리 핑크…. 두 번째 버킷리스트는 보티첼리의 ‘봄’과 같은 꽃밭에서 살아보는 것이다.

요즘 세상은 참 빨리 돌아가 벅차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1889년 5월경 고흐의 동생 테오가 형 고흐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시대가 빨리 변하니 잘 따라가야 할 것 같다’는 대목이 나온다. 참 아이러니하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자신이 편하자고 만든 세상에 자신이 따라가지 못해 언제나 숨차했다는 것 아닌가? 방법이 있다. 예술작품 감상이다.

감상을 하며 작품과 소통하다 보면 딴 생각을 잊게 돼 자연스레 휴식을 얻을 수 있다. 작가의 삶을 바라보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포용력도 생긴다, 미술사 속에서 작품을 보면 역사를 알게 돼 세상을 보는 안목이 넓어질 수도 있다. 한마디로 마음이 정돈돼 참 좋다.

그런데 이 좋은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언젠가는 사람들이 쉽게 미술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미술관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이번 기회에 세 번째 버킷리스트에 올려 본다.

‘플랜더스의 개’는 영국의 여류작가 위다의 작품이다. 나는 만화영화를 무척 좋아하고, 이 작품도 만화를 통해 알게 됐다. 특히 ‘랄랄라 랄랄라∼’로 시작되는 주제가와 함께 네로, 파트라슈 아로아가 춤추며 걸어가는 장면은 언제 보아도 흥겹고 나에게 미소를 준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은 슬프고 마음이 아프다. 할아버지를 잃고 고아가 된 것도 모자라 억울하게 누명까지 쓰게 된 네로는 죽음을 예견한 듯 맨발로 눈보라를 헤치며 성당으로 향한다. 아무도 없는 성당. 그곳에서 네로는 루벤스의 작품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를 보며 마지막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쓰러진다. 그것이 네로와 파트라슈의 마지막이다. 파트라슈는 죽어서도 하늘까지 가는 네로를 끌어준다. 네로는 외로움과 죽음의 두려움을 덜기 위해 한 점의 그림을 선택했다. 나의 마지막 버킷리스트는 죽기 전 행복해하며 바라볼 작품을 미리 정해 놓는 것이다.

버킷리스트라는 말이 생긴 것을 보면 누구나 죽기 전에는 하지 못해 후회되는 일이 생기나 보다. 죽는 순간 후회 없게 멀리 보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정욱 서정욱갤러리 대표
#달#지구#서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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