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한국 교육에서 ‘제3의 길’ 찾기

  • 입력 2009년 1월 29일 20시 07분


명문대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어떤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아이들일까. 서울대가 해마다 실시하는 신입생 특성조사 결과를 보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온다. 부모는 대학 이상을 졸업한 고학력자가 많다. 아버지는 주로 사무직 전문직 경영관리직에 종사한다. 어머니는 전업주부가 가장 많다. 2007년 조사에서 어머니의 62%가 전업주부였다. 요약하면 고학력 부모 아래 태어나 중상류 수준의 생활을 하면서 어머니의 뒷바라지를 받는 학생들이 명문대에 많이 간다.

결식 학생, 끼니 해결만으론 안 된다

이런 유복한 환경과는 거리가 먼 학생들이 주변에 적지 않다. 정부가 급식비를 지원하는 ‘결식 학생’은 60만 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생활 형편이 아주 어렵거나 부모 가운데 어느 한쪽과 살아가는 한부모 가정 자녀들이다. 지원 대상은 전국의 초중고교생 760만 명 가운데 8%에 불과하다.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정이 엇비슷한 학생들이 더 많을 것이다.

입시철이 되면 불우한 처지의 학생이 명문대에 진학한 스토리가 전해진다. 사람들은 감동하며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극히 예외적인 일을 확대 해석하는 것이다. 부모는 밤늦게까지 일하러 나가고 혼자서 정부가 준 쿠폰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학생, 누구도 공부를 돌봐주지 않는 학생에게 대학의 문은 극히 좁고 앞날은 불안하다.

선진국에서도 저소득층의 교육기회 불평등 문제는 심각하다. 그래서 미국의 교육정책인 ‘한 아이도 뒤처지지 않게’는 말 그대로 저소득층 학생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학생들과는 출발선이 다르므로 국가에서 직접 도와줘야 한다고 보고 있다. 영국이 교사와 교장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자극을 주는 것도 결국 학교가 움직이지 않으면 교육의 불평등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면 저소득층 이외에 다른 계층에 대해선 자율을 존중한다. 비싼 돈을 들여 사립학교에 보내든, 학비가 무료인 공립학교에 보내든 알아서 하도록 한다. 자유로운 선택이 최대의 교육 효과를 이끌어내고 그 결과가 사회 전체를 이롭게 한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저소득층 교육은 국가 책임을 강조하고 나머지는 최대한 각자 판단에 맡긴다는 원칙이다.

우리는 어떤가. 이명박(MB) 정부 들어 교육을 둘러싼 대립 양상은 주로 수월성 교육 쪽에서 이뤄지고 있다. MB 반대파는 자율형 사립고나 국제중의 설립을 저지하려 하고 대학입시 자율화에 반대하고 있다. 전국 학업성취도 평가 역시 반대한다. 전형적인 ‘발목잡기’ 전략이다.

그러나 저소득층 학생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는 실종되어 있다. 반대세력들이 ‘현 정부의 교육정책을 저지하는 게 저소득층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지난 정부가 교육평등을 위해 도입한 내신 위주 입시도, 지역균형 선발도 하위 계층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내신 입시는 같은 학교 내에서 교육환경이 나은 학생에게 이익이 돌아간다. 지역균형 선발은 지역 내에서 또 다른 경쟁을 통과해야 한다. 어느 쪽도 저소득층 학생과는 상관이 없었다. 제도를 바꿔 빈곤을 구하겠다는 발상이 현실에서 들어맞은 적은 없었다.

저소득층 교육은 국가 책임

교육당국이 현재 저소득층 학생에게 해주는 것은 급식 지원이나 ‘방과 후 학교’ 지원 정도다. 교사들도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나 관심이 있지 공부 못하는 학생은 잘 돌아보지 않는다. 갈수록 이념 투쟁으로 변질되는 교육 문제에서 ‘제3의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하위 10∼20%에 속한 학생들의 학력을 향상시켜 기회를 열어주는 일에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한다. 반대세력은 경제적 지불 능력이 있는 계층의 발목잡기에서 벗어나 선택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결식학생에게 온정적이다. 다들 배고팠던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끼니 해결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제적으로 험난한 시기를 맞아 ‘립 서비스’가 아닌 실질적인 도움이 이들에게 돌아갔으면 한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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