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영원한 해병’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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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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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형남 논설위원
방형남 논설위원
해병부대 총기 사건은 지난달 말 정년퇴직한 선배가 남긴 말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그는 논설위원 동료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는 자리에서 “군과 검경(檢警)은 비판을 할 때도 밑바탕에 애정을 깔고 바라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군과 검경은 나라의 근간을 지키는 조직이기 때문에 잘못을 저질러도 벼랑으로 몰아 근본이 흔들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다. 그는 32년 2개월의 언론사 경력 가운데 8년 10개월을 국방과 사회 담당 논설위원으로 일했다.

가혹행위, 내무반 살상, 상층부 분열

북한의 도발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불순분자와 범법자가 설치지 못하는 사회를 만들자면 군, 그리고 검찰과 경찰이 굳건해야 한다. 군과 사법부를 지지해야 그들이 사명감을 갖고 국가를 위해 헌신한다는 데 동의하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대다수 국민은 지난해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로 군이 충격에 빠졌을 때도 변함없이 군을 감싸주고 격려했다. 군에 대한 사랑을 강조한 선배는 평소에도 후배들에게 6·25전쟁 때 다부동전투에 참전했던 부친의 경험을 전해주며 북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병사 4명의 목숨을 앗아간 해병부대 총기 사건은 국민의 사랑과 지지에 찬물을 끼얹었다. 유낙준 해병대 사령관은 “해병대가 타군에 비해 10년 이상 병영문화가 뒤져 있다”고 시인했다. 지난 2년 3개월간 943명의 해병대원이 고막 파열 등 구타에 따른 것으로 의심할 만한 증상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다는 국방부 자료도 공개됐다. 국방부와 해병대 수뇌부는 총기 사건을 초래한 해병부대의 가혹행위 실태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해병대가 최선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애정을 갖고 정성을 기울였다면 구타와 가혹행위가 이토록 만연했겠는가.

연평도 사태 때 북한의 포탄 세례를 받았지만 전사한 해병대원은 2명이었다. 이번에는 대낮에 4명의 해병대원이 동료에 의해 생명을 잃었다. 북한의 공격보다 더 무서운 게 동료 병사가 방아쇠를 당긴 총탄이었다. 누군가가 총을 난사할까봐 병사들이 야간 경계근무 후에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다면 해병대는 강군이 될 수 없다.

해병대 상층부의 군기도 추락했다. 두 달 전 현직 사령관을 무고한 혐의로 해병대 소장 2명이 구속됐다. 해병대의 현역 장성은 사령관인 중장 1명, 소장 4명, 준장 10명 등 모두 15명이다. 소장 4명 가운데 반이 구속됐으니 지휘체계가 쓰나미를 만났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부분의 국민은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며 끈끈한 전우애를 자랑하는 해병대를 든든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올해 해병대가 보여준 것은 상층부는 서로 불신하고 말단 병사는 내무반 동료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하는 일그러진 모습이다.

귀신 잡는 해병의 전우애 되찾으라

해병대는 어제 사령관 주재로 긴급 지휘관회의를 열어 “인간 중심의 선진 병영문화를 창출하겠다”고 다짐했다. 병영문화 혁신 100일 작전에도 돌입했다. 31년 전 육군 병장으로 제대한 필자는 지금도 군 복무를 함께했던 전우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우애를 나눈다. 그때도 고충이 많았지만 우리는 이겨냈다. 선후배 동료들과 대화하고 격려하며 위기를 넘겼다. 해병이 구타와 가혹행위에 무너진다면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영예를 포기해야 한다. 18일 해병 1146기가 포항 교육훈련단에 입영한다. 해병대는 당장 그들을 안심시킬 대책부터 마련해야 한다. 묘책이 떠오르지 않으면 유낙준 사령관이 입영자 모두를 끌어안고 “책임지고 지켜주겠다”는 약속이라도 하라. 국민의 애정과 신뢰를 잃으면 해병대는 벼랑 끝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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