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방형남칼럼]‘북핵 3修’는 없다

  • 입력 2004년 2월 25일 19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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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철도 및 도로 연결 현장은 고즈넉했다. 며칠 새 늦겨울 날씨로 변하고 말았지만 지난주에는 그곳에도 이른 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햇볕이 따스했다. 방탄조끼와 헬멧을 착용하고 남방한계선을 지나 비무장지대로 들어서니 남북으로 연결된 널찍한 도로와 철도가 거짓말처럼 눈앞에 나타났다. 지뢰가 제거된 폭 250m의 땅. 의미 그대로 완전한 비무장지대다.

낯선 사람들의 출현에 놀란 듯 장끼의 청아한 울음이 잠시 정적을 깬다. 도로 밑으로는 여러 개의 생태터널이 뚫려 있다. 멧돼지 고라니 등 야생동물이 자유롭게 오가도록 배려한 것이다. 여기저기 쌓인 돌무더기에는 동면하는 뱀이, 맑은 물이 흐르는 개천에는 참게가 지천이란다.

▼보이는 평화, 잠복한 위협 ▼

군사분계선 너머 100m 지점에서 북한 군인들이 경비초소를 짓고 있었다. 남쪽으로 100m 떨어진 곳에 남측 초소가 이미 들어섰으나 북측은 늦게 공사를 시작했다. 바람을 막기 위해 골조가 완성된 초소를 비닐로 감싸 놓고 느릿느릿 작업을 하는 북한 군인들의 모습이 한가로워 보인다.

남북이 이렇게 비무장지대를 관통하는 길까지 만들었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누가 자유롭게 북으로, 남으로 내달리는 것을 막고 있는가. 잠시 어린애 같은 감상에 젖었다. 일행 모두 남북 대치 현장이 이토록 평화롭게 보이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다른 성격의 장면도 있다. 북측은 경의선 연결에 합의할 때 한 약속을 어기고 3중 울타리와 2중 전기철조망을 설치했다. 우리는 철도 연결을 완성하고 도로 포장까지 끝냈지만 북은 철도 연결과 도로 포장을 계속 미루고 있다.

경의선 연결 현장에서 감상에 젖는 것도, 북의 약속 불이행이 경제난 때문만은 아님을 헤아리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어제 중국 베이징에서 시작된 2차 6자회담도 마찬가지로 이중적이다. 보이는 평화에 취할 것인가. 보이지 않는 위협에 대비해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인가.

다행히 시작은 좋다. 반년 전 1차 회담 때와는 달리 남북 대표단이 회담 개막 전에 만나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 ‘조율’까지 했다. 각국 대표는 개막 인사에서 ‘한반도 비핵화(한국, 중국)’,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북한)’, ‘고농축우라늄을 포함한 핵 폐기(미국)’라는 나름대로의 어법을 동원하기는 했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기대만은 한결같다.

좋은 징조다. 하지만 아직은 부족하다. 반년 만에 재개된 회담 자체에 몰입해서는 안 된다. 왜 그래야 하는가. 1차 북핵 위기(93∼94년)를 떠올려 보자. 북한과 미국은 ‘경수로 건설’이라는 해법으로 벼랑 끝에서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북-미의 제네바 합의는 10년이 안 돼 휴지가 됐고 오히려 더 큰 위기가 닥쳤다. 단순화하면 핵문제 당사자의 일부인 북-미가, 핵위기의 출발점인 북한의 핵 관련 시설을 동결하는 불완전한 방식으로 사태를 종결시켰기 때문이다.

▼핵없는 북한을 목표로 ▼

이번에는 확실하게 매듭지어야 한다. 불완전한 방식으로 잠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반갑게도 경수로를 뛰어넘는 해법이 부상하고 있다. 완전하고(Complete) 검증 가능하고(Verifiable) 돌이킬 수 없는(Irreversible) 핵 폐기(Dismantlement)라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중간 과정이나 우회로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최종 목적지는 CVID, 즉 ‘핵 없는 북한’이 되어야 한다. 완벽한 결말을 위해서는 북한 미국뿐 아니라 남한 중국 일본 러시아가 반드시 당사자로 참여해 양자합의가 아닌 다자합의를 만들어내야 한다.

북핵 위기는 2차례로 끝이다. ‘북핵 3수(修)’는 없다. 6자회담은 그런 확신을 심어 줘야 한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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