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의 대화]최재천/'풍요의 악순환'을 끊자

  • 입력 2003년 9월 24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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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목이 까끌까끌하다 싶더니 이젠 기침이 멈추질 않는다. 병원에 들렀더니 기관지염이란다. 그런데 약을 먹기 시작한 지 열흘이 지나도 좀처럼 가라앉질 않는다. 몇 년 전부터 안사람은 내 목소리가 예전에 비해 너무 많이 탁해졌다며 강연 일정을 줄이라고 당부한다. 이비인후과 의사인 친구는 전화 목소리만 듣고도 목에 이상이 있으니 일간 한번 들르란다.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사실 상당히 낭랑한 목소리를 자랑했다. 강의를 몇 시간씩 내리 해도 목이 잠기거나 아파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자주 목감기를 앓는다. 하기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대기오염도가 가장 높은 서울이라는 지옥에 살면서 뭘 바라랴. 가끔씩 서울을 벗어날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가슴 깊숙한 곳까지 큰 심호흡을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곤 서울에 사는 동안 늘 짧게 ‘새우숨’을 쉬고 살았다는 걸 깨닫곤 진저리를 친다.

2월 OECD 발표에 의하면 서울의 미세먼지 오염도는 24개국 중 단연 1위이고 이산화질소 오염도는 두 번째로 높단다. 이러한 대기오염의 주범은 바로 자동차 배출가스로서 서울의 경우 전체 대기오염 물질의 85%를 차지한다. 2003년 현재 우리나라의 자동차 등록대수는 총 1300만대에 이른다. 그에 비하면 자동차가 달릴 수 있는 도로의 길이는 9만1400km에 불과하다. 작은 땅덩어리를 감안할 때 그 자체로는 그리 짧은 길이가 아니다.

하지만 버스와 트럭까지 고려해 자동차 한 대의 평균 길이를 약 3.5m로 잡고 1300만대의 자동차들이 한꺼번에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고 상상해보자. 자동차의 행렬은 장장 4만5500km에 이를 것이다. 전체 도로 길이의 절반이 넘는 길이다. 차와 차 사이에 겨우 차 한 대 거리를 유지한 채 전국의 도로는 그저 긴 주차장이 되고 말 것이다. 민족의 대이동이 고생길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처럼 너무나 간단하다.

우리가 내는 세금에는 교통세라는 게 들어 있다. 1994년부터 금년 말까지 10년 동안 한시적으로 내기로 한 이 목적세 덕분에 교통 관련 시설이 전반적으로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발생한 대기오염 등의 환경 파괴는 가늠조차 하기 어려운 엄청난 손실을 가져왔다. 일찍이 독일의 수학자 브라에스(Braess)는 “도로를 넓히면 그만큼 수요가 늘어 정체는 점점 더 심해진다”고 역설한 바 있다. 자동차 수가 증가함에 따라 도로가 막히게 되고, 그로 인한 교통체증을 해소하고자 또다시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면, 그에 따라 자동차의 수가 또 늘고 하는 이른바 양성되먹임 과정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는 이를 ‘풍요의 악순환’이라 부른다.

연구 때문에 나는 일본에 자주 드나든다. 일본에 갈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자가용으로 이동해 본 경험이 거의 없다. 리무진 버스와 철도만 엮으면 못 갈 곳이 없다. 일본은 일찍부터 유럽처럼 대중교통수단에 투자해 교통문제와 환경문제를 동시에 해결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땅도 좁은데 교통정책은 어쩌다 저 큰 나라 미국을 흉내 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우리는 그래도 이제 곧 고속철의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미국은 아직 고속철에 대해 논의도 하지 않는다. 땅이 워낙 넓어 당분간 자가용의 시대가 계속돼도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몇 달 후면 폐지될 교통세를 놓고 정부 부처간에 의견이 분분한 모양이다. 교통세를 폐지하는 대신 환경세를 신설해 최악에 이른 우리 환경을 되살릴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동북아 물류중심국가에 걸맞은 운송망을 건설하기 위해 교통세 폐지를 부득이 보류해야 한다면, 교통세를 교통환경세로 전환해 세입의 상당 부분을 환경 보전과 개선에 투자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바다. 어느 통계에 따르면 서울에서는 매년 2000여명이 대기오염으로 조기에 사망한다고 한다. 아우슈비츠에서는 2000명의 유대인들이 지클론 B라는 독가스 10kg에 사라졌다. 우리의 수도 서울이 한국인의 아우슈비츠로 전락하는 걸 언제까지나 보고만 있을 것인가.

최재천 서울대 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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