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시욱칼럼]'DJ식 햇볕정책' 폐기하라

  • 입력 2003년 5월 14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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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비밀송금 사건에 대한 특검수사가 진전됨에 따라 문제의 검은 돈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현대그룹의 대북사업 독점권의 대가라던 천문학적인 돈은 결국 국가정보원 주도로 송금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돈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뇌물일 것이라는 의혹을 더욱 짙게 했다.

도대체 왜 김 전 대통령은 그 많은 뒷돈을 바쳐가면서 서둘러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려 했는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충정에서? 아니면, 현 정권의 어느 실세가 일찍이 말한 것처럼 노벨평화상에 욕심이 있어서? 그것만도 아니라면 임도 보고 뽕도 따려는 일석이조(一石二鳥) 전략에서? 그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앞으로 특검이 가려낼 일이다.

▼퍼주기로 돌아온 건 北核뿐 ▼

다만, 지금 시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토록 무리하게 추진된 그의 햇볕정책이 북한의 변화는커녕 핵무기 개발이라는 엄청난 재앙으로 우리에게 되돌아왔다는 사실이다. 김 전 대통령의 구걸식 대북 자세로 인해 평양 정상회담은 논란거리가 된 통일조항에 합의하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해서는 진지한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과거 정권의 신중하고 균형 잡힌 대북 화해정책의 성과물이며 ‘한반도 평화의 마그나카르타’라 평가되던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은 사실상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김대중 정권은 북한 핵에 대해 ‘대화를 통한 해결’이란 말만 되풀이하다가 임기를 끝냈다. 결국 남은 것은 사이비 평화에 대한 환상과 그 부작용뿐이다.

김 전 대통령을 위해 다행한 것은 그의 햇볕정책이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평화번영정책’이라는 이름으로 계승되고 햇볕정책 지지자들이 현 정권의 안보외교팀에 포진한 사실이다. 북한 핵이 사실로 드러나 여당 내에서조차 대북 정책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아도 이들의 햇볕정책 고수자세는 끄떡도 없다. 최근에는 김 전 대통령의 대통령비서실장이었던 인사조차 자신은 과거 햇볕정책의 전도사였으나 북한측이 남북 비핵화공동선언을 깬 이상 대북 경제협력에 속도조절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충고도 노 정권에는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노 대통령이 이번 방미 전까지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만을 고집한 이유는 그의 선거공약인 ‘동북아 경제중심 및 동북아 평화체제’ 구상에서 비롯된다. 대북정책 초점을 한반도에서 동북아로 확대해 남북한과 동북아가 공동으로 번영하는 동북아시대를 연다는, 그로서는 아주 야심적인 구상이다. 현재의 북핵 문제가 이 계획을 위해서는 도리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정책들이 그렇듯이 동북아 프로젝트 역시 계획이 이상적이라는 것과 실현 가능성은 별개의 문제이다. 이런 종류의 ‘동북아 공동의 집’ 구상은 이미 10년 전부터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 거론되었고, 김 전 대통령은 ‘동아시아 공동체’ 안을 5년 전 아세안+3 정상회의에 제안해 긍정적 반응을 얻은 바 있다.

김대중식 햇볕정책의 과오는 무원칙한 퍼주기식 추진 방법에 있다. 북한과의 화해협력정책 자체는 역대정권이 모두 추진한 것이다. 노 정권이 다시 햇볕정책을 답습한다면 북한측은 이를 역이용해 그들의 핵개발을 기정사실화할 우려가 있다. 그렇게 되면 그의 동북아 프로젝트는 첫 관문에서 좌절될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이 이번에 뉴욕에서 말했듯 새로운 동북아평화 구축에는 한미간의 공동보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북핵에 대한 그의 입장은 방미를 계기로 강경해졌다.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그는 이를 분명히 해야 한다.

▼訪美, 대북관계 성찰의 기회로 ▼

그의 동북아 구상에 있어서 최대 관건은 김정일의 변화다. 김정일이 과연 ‘선군정치’와 ‘우리식 사회주의’ 노선을 버리고 개혁 개방으로 나갈 것이냐는 점이다. 그는 남북 평화공존보다는 연방제 통일을 위해 다방면에서 통일전선전략을 펴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노 정권이 김정일을 변화시키려면 김대중 정권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 대통령은 이번 방미를 대북 관계에 대한 성찰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남시욱 언론인·세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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