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시욱 칼럼]盧당선자의 첫 시험대

  • 입력 2003년 2월 5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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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상선 관련 대북 비밀송금 의혹 사건을 둘러싸고 국민 여론이 들끓고 있는 데도 국정책임자들은 하나같이 납득이 가지 않는 말만 하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해 앞뒤가 맞지 않는 해명을 하면서 감사원의 고발조치를 막은 김대중 대통령이 그렇고, 정치적 고려 없는 검찰수사를 주장하던 당초 공약과 달리 이 사건의 처리를 국회로 떠넘긴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그렇고, 정치권의 눈치를 보고 노골적으로 직무의 포기를 결정한 검찰이 그렇다.

거기다가 일부 ‘진보적’ 인사들은 대북 송금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경제 협력이므로 불문에 부쳐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나섰다. 이런 가운데 북한 당국이 이 문제로 남쪽에서 말썽을 삼으면 전쟁이 날지 모른다고 위협하자 일부 여당 인사까지 여기에 동조하는 듯한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속속 드러나는 ‘대북송금’ 비밀▼

우선, 김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이종남 감사원장으로부터 이 사건에 대한 감사보고를 받고 언급한 발언은 모순투성이다. 그는 가정법적 화법으로 “현대상선의 일부 자금이 남북경제협력사업에 사용된 것이라면…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마치 감사원의 보고를 듣고서야 사건 진상을 처음 알았다는 투다. 김 대통령은 이 발언의 서두에서 남북관계의 특수성이 ‘통치권자로서의 수많은 어려운 결단’을 요구했다고 말해 이 문제가 이른바 ‘통치권’과 관련이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감사원 보고대로라면, 그리고 이 돈이 현대의 대북 독점사업 계약대가라는 4일의 박지원 대통령비서실장의 해명이 옳다면 이 사건은 아주 단순한 사안이다. 즉 현대상선이 산업은행 융자신청서에 자금의 용도를 다르게 기재하고 통일부 등에 대북 송금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은 데 불과한 사건이다. 대통령이 나서서 감싸고 말고 할 일이 못 된다. 더더구나 청와대가 현대를 통해 북에 송금하지 않았다면 통치권 운운할 여지가 없는 사안이다. 김 대통령은 국민의 의혹이 바로 청와대에 쏠려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처럼 모순되는 주장을 했으니 고의로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닌가.

최근 들어서는 그가 노벨평화상을 받기 위해 남북정상회담을 서둘러 추진하고 이를 위해 뒷돈을 보냈다는 여러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문희상 대통령비서실장 내정자는 2일 주목할 만한 언급을 했다. 그는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할 것을 주장하면서 “솔직히 김 대통령도 노벨평화상에 욕심이 있었을 테고…”라고 말했다. 기왕에 야당에서 주장하던 노벨상 관련 설이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된 것이다.

노 당선자의 최근 행태도 주목거리다. 그는 철저한 검찰수사 공약에서 선회해 1월 안에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겠다고 했다가 3일 이 사건의 정치적 해결 방침을 밝혔다. 그는 외교적 파장과 국익을 고려해 진실 규명의 주체와 절차, 범위 등은 국회에서 판단하는 것이 좋다고 말해 검찰수사를 배제했다. 노 당선자의 이러한 행보는 김 대통령과 노 당선자측의 교감설 보도와 함께 여러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특검안을 국회에 제출하자 노 당선자는 이를 수용할 것이라 해 다시 한번 관심을 끌었다. 이것은 정치적 해결 방안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 당선자는 이미 야당의 공세와 국민여론 앞에서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이를 위한 정치적 포석을 했다는 해석도 있다. 그 방법이 김 대통령의 섭섭한 마음을 사지 않으면서 문제를 풀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런 노 당선자의 행보는 벌써부터 그가 정치플레이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 처리를▼

이 사건은 노 당선자가 취임도 하기 전에 부닥친 최대의 정치적 난제다. 무슨 일이든 대개 그렇지만 이 사건 역시 그에게는 중대한 정치적 도전이자 기회이기도 하다. 차기 정부의 최고책임자로서 그의 지도력을 가늠할 첫 시험대인 이 사건은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정치’이며 새로운 남북관계를 정립하는 길이다.

남시욱 언론인·성균관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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