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긴축시대에 케네디와 나폴레옹만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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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3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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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논설위원
황호택 논설위원
공짜라고 해서 반드시 악성 포퓰리즘은 아니다. 전철 공짜 표를 받는 65세 이상 노인들이 전철역을 오가고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건강이 좋아져 국민건강보험 재정에 보탬이 될 것이다. 노인들을 지하철로 유도해 지상의 교통체증과 유류 소비를 줄여준다. 온양온천에 가서 목욕을 하고 춘천에 가서 닭갈비를 사 먹는 노인들이 늘어나면서 서울 돈으로 지방 경제의 온기를 덥혀주는 효과도 있다.

65세 이상 지하철 요금 무료화에서 훨씬 더 나아가 고속도로 통행료를 전면 무료화하면 어떻게 될까. 고속도로 통행료를 아끼기 위해 고속버스나 KTX를 이용하던 사람들도 차를 몰고 나와 교통체증을 악화시키고 유류 소모와 CO2의 발생량을 증대시킬 것이다. 고속도로의 신설과 유지보수 비용을 국가 재정에서 떠맡게 돼 납세자의 부담이 커진다. 결과적으로 차를 갖지 않은 사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성실한 사람에게 불이익을 안기는 제도다.

일본 민주당은 2009년 4월 총선 공약으로 고속도로 통행료 무료화를 내걸었다. 집권 후 주요 고속도로의 주말 통행료를 1000엔으로 하는 통행료 상한제를 시범 실시하다가 동일본 대지진 이후 재원이 부족해 폐지했다. 일본 민주당이 총선 때 재미를 본 네 가지 선심정책은 일본어로 발음하면 모두 K로 시작해 4K라는 별칭이 붙었다. 장기불황으로 가라앉은 내수를 부추기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고속도로 무료화를 포함해 복지공약을 전부 실현하자면 16조 엔이 넘는 재원이 필요했다. 민주당은 집권 후 아동수당과 고교 무상교육만 시행하고 고속도로 무료화와 농가 호별소득보상제도는 포기했다.

세금 아껴 쓰는 지도자 대망론

일본 민주당의 4K 포퓰리즘은 당명이 같은 한국 민주당으로 옮아붙었고 4·27재·보선에서 패배한 뒤 초조해진 한나라당까지 전염됐다. 요즘 반값 등록금에 반대하다가는 대학생을 둔 부모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반동 부르주아지로 몰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대학교육은 수익자 부담 원칙에서 접근할 사안이다. 정부가 대학 등록금에 보태줄 돈이 있으면 복지의 사각지대부터 챙겨야 한다. 전국 3690개 지역아동센터가 운영난을 겪고 있다. 가난한 아이들이 점심이나 저녁을 먹고 공부하는 곳이다. 한나라당 강명순 의원은 아동센터 아이들에게 신발이나 학습 준비물을 살 수 있도록 매달 5만∼7만 원을 주고 가난한 조손(祖孫)가정에도 월 30만 원 정도를 지급하는 데 7000억 원 정도의 예산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국민연금 미가입자가 500만 명이고 전기요금 수도요금을 못 내는 가구도 많다.

세계 각국은 국가 부채를 줄이기 위해 긴축재정의 고삐를 죄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비서실장이던 람 이매뉴얼 시카고 시장은 전임자로부터 재정적자 6억5000만 달러의 시한폭탄을 넘겨받았다. 그는 시의회 의원을 50명에서 25명으로 줄이자고 제안했다. 시청 공무원들이 고급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주저 없이 꺼내던 공용 신용카드를 회수했다. 공무원노조에 대해서는 근로조건 개혁과 정리해고 중에서 택일하라고 압박한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사는 대통령을 영웅적이고 고결한 지도자로 규정해 후대의 대통령들을 웅대한 이미지에 사로잡히게 만듦으로써 국가에 손상을 입혔다”고 비판했다. 민주화 시대의 대통령은 백마를 타고 진군나팔을 부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아니라 국사(國事)의 우선순위를 다투는 각기 다른 관점의 조정자로서의 기능이 중요하다.

8월 하순에 치러질 서울시 주민투표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공짜 점심’ 포퓰리즘의 한판 승부가 될 것이다. 서울시민이 정치인 오세훈을 염두에 두고 투표할 필요는 없다. 오 시장이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걸면 주민의 판단이 정치적으로 흘러 전면 무상급식에 대한 주민 의사를 왜곡할 수 있다. 하위 소득 50% 가정의 자녀에게 단계적으로 실시하는 A안이든, 초중고생 전면무상급식의 B안이든 서울시는 투표 결과에 승복하면 된다. 지든 이기든 오 시장의 용기 있는 싸움은 그에게 원칙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것이다.

복지 분수령 될 서울시 주민투표

정치권이 쏟아낸 무상의료, 무상보육, 반값 등록금 등 선심정책을 모두 집행하려면 60조 원이 들어간다는 게 기획재정부의 집계다. 한국은 남북 대치 상황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부담이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들에 비해 높다. 통일 이후의 비용에도 대비해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4K, 5K를 늘려가다 보면 미래세대에 ‘돼지국가’(PIGS)를 물려주게 될 것이다.

사회복지는 지속가능성과 부문 간 균형성을 갖춰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는 케네디나 나폴레옹이 아니라 람 이매뉴얼처럼 국민 세금을 적재적소(適材適所)에 아껴 쓰는 지도자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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