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혹한에 갇힌 청와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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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6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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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논설위원
황호택 논설위원
“지난여름엔 신일 선풍기가 가고 올겨울 혹한(酷寒)에 경동 보일러가 터졌다.” 청와대 주변에서 유행하는 정치 조크다. 6·2지방선거 패배 후 정정길 대통령실장 체제가 해체되면서 이동관 전 홍보수석으로 대표되던 신일고 인맥이 퇴조했다. 임태희 대통령실장과 낙마한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는 경동고 동문이다. ‘왕의 남자들’이라던 이 전 수석과 박형준 전 정무수석은 작년 12월 31일 청와대로 귀환했지만 본관 진입을 ‘못하고’ 창성동 별관에 둥지를 틀었다.

청와대는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한 뒤인 2009년 9월 “인사시스템을 개혁하겠다”며 인사기획관을 신설했다. 이 자리를 1년 3개월 동안 비워놓고 임 실장이 겸직하다가 작년 12월 31일 아예 폐지해버렸다. 단선(單線)의 인사결정시스템이 인사실패를 키운다는 비판이 나온다. 감사원장은 현직 대통령의 비서를 지낸 사람이 하기에 적합한 자리가 아니다. 임기 말에 공직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도 대통령과 연이 먼 사람을 보냈어야 한다. 정동기 씨는 재판도 없이 사형선고를 내렸다고 불만을 토로했지만 그대로 갔다가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됐더라면 이명박 대통령은 정말 절름발이 오리가 돼버렸을 것이다.

인사 권한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다보면 여러 측면을 분석적으로 보기 어려워진다. 소외된 사람들은 평론가가 될 수밖에 없다. 청와대의 한 비서관은 “임명동의 투표가 무난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김영란 전 대법관을 감사원장에 앉히고 정동기 씨를 국민권익위원장으로 보냈더라면 이번처럼 꼬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감사원의 중요 결정은 위원회를 통해 내려지고 궂은일은 사무총장이 거든다. 김 전 대법관이 감사원장으로 갔더라면 여권(女權) 향상의 상징성도 컸으리라는 것이다.

참모들 제역할 못해 펑크 났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감사원장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촉구할 때까지 청와대의 안테나는 먹통이었다. 당의 기류를 감지하고 대책을 세울 책임은 정진석 정무수석에게 있다. 정 수석은 한나라당에서 비례대표 의원이 되기 전까지 자민련과 국민중심당에서 정치를 해 당심(黨心)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지 못한 것 같다. 김영삼 대통령 때의 이원종 정무수석은 막강한 권한을 쥐고 야당의원들까지 관리했다. 지금은 정무수석의 파워가 약해 누가 하더라도 대외협력수석 역할에 그칠 것이라는 동정론이 나온다.

3선의원인 임 실장은 정 후보자 인사파동 전반에 대한 조율 실패의 책임도 있다. 이 대통령이 노른자위 지역구(성남분당을)를 버린 임 실장을 쉽게 내치기 어렵겠지만 인사실패와 당-청(黨靑) 또는 청-청 갈등이 이어진다면 상황을 예측하기 어렵다.

민정수석실도 코너에 몰렸다. 인사검증의 잇단 실패로 체면을 구긴 마당에 함바집 폭풍까지 밀려왔다. 함바집에 연루된 배건기 전 감찰팀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일 때 경찰청 소속으로 서울시에 파견 근무를 했다. 2006년 6월 이 대통령이 시장 임기를 마치고 대선 행보에 나서자 경위 계급장을 떼고 대선 기간 내내 경호를 맡았다. 정권 출범 이후에는 청와대 행정관급으로는 드물게 대통령 직보(直報)가 가능한 감찰팀장을 맡았다. DJ YS 노무현 정부에서도 사고 친 것은 언제나 직계와 친인척이었다. 어떤 조직이건 “우리가 남이가”를 합창하는 순간 건강성을 잃는다.

권재진 민정수석은 마음을 비웠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이종찬 초대 민정수석은 광우병 촛불시위로, 2대 정동기 수석은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검증부실로 그만뒀다. 이 대통령은 민정수석을 3대 연속 고검장급에서 임명하고 있지만 들어오는 사람마다 불명예 퇴진을 하면 거액의 봉급을 주는 로펌을 마다하고 ‘오후 4시’의 청와대에 들어올 고검장급을 찾기 힘들 것이다.

단물族 떠나면 순장組만 남는다

홍상표 홍보수석이 이틀 뒤에 사퇴할 사람을 놓고 당청 대립처럼 비칠 수 있는 말을 한 것은 적절하지 못했다. 누가 시켰더라도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렸어야 하는데 홍 수석은 정권의 지분이 약한 탓인지 수시로 흔들린다. 친이계의 한 중진의원은 “‘대통령이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같이 대통령의 심기를 드러내는 듯한 표현이 청와대에서 여과 없이 흘러나오는 것은 잘못”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구제역 민심이반도 심각하다. 동토(凍土)에 자식 같은 소와 돼지를 파묻는 축산인의 가슴이 미어진다. 불과 두 달 전에 치러진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청와대에 파견된 공무원들은 임기 4년차를 맞아 친정으로 돌아갈 준비를 슬슬 하고 있다. 정치인 출신 비서관들은 올 하반기에는 총선 출마를 위해 가방을 챙길 것이다. 청와대에서 ‘단물족(族)’들이 떠나고 나면 이 대통령은 ‘순장조(殉葬組)’와 함께 국정을 추슬러야 하겠지만 진짜 순장조가 있기나 한지도 모르겠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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