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 칼럼]5년 단임제, 끝낼 때 됐다

  • 입력 2006년 6월 24일 0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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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누가 대통령 당선자가 되든 그는 정권을 넘겨받을 준비와 함께 2008년 4월 총선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2008년 2월에는 취임 선서를 하기가 무섭게 두 달 뒤 선거에 ‘다걸기(올인)’해야 할 것이다. 중간 평가랄 건 없다. 승세(勝勢)가 이어져 집권당에 안정 의석이 주어질 가능성도 낮지 않다. 그러나 유권자의 견제 심리가 때 이르게 작동해 여소야대(與小野大)라도 되는 날이면 새 정부의 체면이 말이 아닐뿐더러 초장부터 국정이 꼬일 위험성이 적지 않다.

집권 3년차인 2010년에는 중간 평가를 피할 수 없는 지방선거가 있다. 중간 평가에서는 어지간히 잘해도 야박한 점수가 나오기 십상이다.

집권 막바지인 2012년 4월에는 다시 총선이 기다리고 있다. 같은 해 12월 대선을 불과 8개월 남겨 둔 시점이다. 여기서 성적이 나쁘면 그걸로 끝장이다. 5년 임기에 총선 두 번, 지방선거 한 번에, 그 사이 재·보궐 선거까지 끼어들다 보면 말 그대로 선거 치르다가 세월 다 보낼 판이다. 그 통에 죽어나는 것은 경제요, 민생이다.

여소야대 되면 야당과 상생(相生) 정치 하면 되지 않느냐, 견제와 협력이야말로 선진 정치가 아니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위와 현실은 다르다. 입으로는 상생과 협력, 통합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반목과 대립, 갈등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 정치의 고질(痼疾)이 다음 정권하에서라고 크게 달라지겠는가.

임채정 신임 국회의장이 개헌(改憲)의 운(韻)을 떼자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현 정권 아래서 어떤 개헌 논의도 하지 않는다, 다음 대선 때 공약으로 내걸고 심판을 받자”고 못을 박았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대통령 중임제 개헌이 필요하지만 여당이 주장하면 정치 공작이라고 할 것이므로 제안하지는 않겠다”는 태도다. 제1야당이 안 된다고 하고, 여당은 추진할 힘조차 없으니 개헌은 물 건너간 격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대선 공약으로 하자고 하지만 대통령 임기를 어떻게 조정한다고 한들 ‘소급 불가(不可)’에 걸려 실제는 다음 정권(2013년)에서부터나 적용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한나라당도 무조건 안 된다고 할 게 아니라,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5년 임기 앞뒤로 총선을 두 번이나 치러야 하는 현재대로 가는 게 과연 괜찮은 것인지 국민에게 물어보는 것이 옳다. 국정의 효율성과 안정성 면에서 안 좋겠다고 하면 바꿔야 한다.

물론 전제 조건은 있다. 개헌을 선거 주기 조정, 즉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4년으로 맞춰 선거를 함께 치르는 한편 지방선거는 임기 중간에 하는 것에 국한하는 것이다. 여권은 한나라당이 의심하듯 개헌을 고리로 판세를 흔들 속셈이 아니라면, 이 전제 조건을 받아들일 것을 국민 앞에 약속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는 영토 조항을 손질해야 한다느니, 경제 관련 조항에 토지 공개념을 도입해야 한다느니 하며 이념논쟁을 일으키고 편을 가르려는 정략(政略)이 개입되면 개헌은커녕 나라만 결딴날 뿐이다.

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 권력 구조를 통째로 바꾸는 일도 지금은 안 된다. 국민 여론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야가 선거 주기 조정이란 단일 의제에 합의하면 ‘제한적 개헌’은 가능하다고 본다.

1987년 체제의 산물인 대통령 5년 단임제는 이제 그 수명(壽命)이 다했다고 봐야 한다. 4년 중임제를 해 봐야 앞의 임기 4년 동안은 재선(再選)에만 목을 걸지 않겠느냐는 논리도 설득력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지금 같은 ‘5년 무(無)책임제’에, 오만과 독선으로 민의(民意)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무능하면 1년을 앞당겨 심판할 수도 있다.

개헌으로 판을 흔들어 정권을 잡는 일이 더는 가능하지도, 용납되지도 않는 세상이다. 한나라당은 이제라도 ‘선거 주기 조정 단일 의제 개헌’에 능동적으로 나서길 바란다. 그렇게 한다면 한나라당이 정파적 이해보다는 나라의 미래와 국민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진정한 수권 정당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훌륭한 신호가 될 것이다.

전진우 大記者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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