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김사과]익숙한게 낯설어져야 펜을 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김사과 소설가
김사과 소설가
오스트크로이츠역은 공사 중이다. 임시통로의 양 벽에는 클럽 홍보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 있고 바닥에는 깨진 술병이 뒹군다. 계단을 오르면 나무판자와 철골 구조물로 된 임시 승강장이 나타난다. 나는 누군가와 함께 있다. 그가 혹은 그녀가 묻는다. 너는 글을 쓴다고 했나? 어. 여기에 온 진 얼마나 됐어, 뭘 하고 지내? 열흘쯤 됐나. 가끔 글을 쓰고, 보통은 놀아. 전에 여기 와 본 적 있어? 아니, 처음이야.

우리는 전철을 기다린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하다. 노란색 크레인, 뾰쪽하게 솟은 나무와 오래된 건물을 제외하면 도시는 낮게 누워 있다. 여기에 대한 글을 쓰는 거야? 아니, 한국에 대해서. 어떤? 그냥, 모든 것, 사람들, 인생, 만나고 헤어지고 뭐 그런 거. 한국말로 쓰는 거야? 아니면 영어? 나는 글을 쓸 정도로 영어를 잘하지 못해. 대화가 끊긴다. 그는 혹은 그녀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나 또한 별로 이 주제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 전철은 오랫동안 오지 않고, 승강장의 사람들은 느릿느릿 움직인다. 그는 혹은 그녀는 무료해 보인다.

유럽 어딘가에 있는 나

나는 어색함을 참지 못하고 다시 입을 연다. 나는, 보통 한국 밖에서 글을 써. 한국에 대해서 쓸 때, 나는 가능한 한 한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싶어. 왜냐하면, 나는 나의 나라를, 나의 사람들을 처음 방문한 외계의 행성, 외계인처럼 바라보고 싶어. 외국에 있을 때 그것이 조금은 가능해진다는 생각이 들어. 물론 여기서도 나는 얼마든지 한국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지. 왜냐하면 요즘 대부분의 한국은 인터넷 속에 들어 있으니까. 하지만 여기에 있는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 왜 사람들이 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지, 왜 화를 내는지, 왜 기뻐하는지. 익숙했던 것들이 생소해질 때, 나는 그 생소한 것들, 한때 아주 자연스러웠던 것들에 대해서 쓰기 시작해. 그것은, 이해해 보려고 하는 거야. 물론 결국 이해하는 데 실패할 거라고 생각해. 왜냐하면, 저기를 좀 봐, 이 도시는 건물들이 아주 낮아서 나는 저기 보이는 텔레비전 타워를 따라 서쪽으로 갈 수 있어. 한국에서는 불가능하지. 물론 나는 서울의 황사를 기억해. 하지만 그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야. 나는 그것을 더 이상 느낄 수가 없어. 그래서 심지어 그것이 아름답다고 생각돼.

어느새 우리는 전철 안에 있고, 꿰뚫는 듯한 햇살이 조용히 덜컹거리는 전철을 가득 채우고 있다. 전철은 천천히 도심을 향해 나아가고, 창밖으로 핵전쟁에서도 살아남을 듯한 육중한 건물들이 천천히 다가오고 멀어진다. 거대한 연분홍색 건물을 스쳐가는 동안 그가 혹은 그녀가 나에게 그 건물에 대해서 농담한다. 저 분홍색을 봐. 정말이지 촌스러워. 저 쇼핑몰의 이름이 뭔지 알아? 난 절대로 저 쇼핑몰에는 안 가. 저거랑 비슷한 분홍색 건물을 본 적이 있어. 내가 말한다. 어디에서? 다른 도시에서, 그건 영화관이었는데, 아마도 유럽에서는 분홍색이 유행인가 보지. 내 말에 그가 혹은 그녀가 그러니까 유럽인이 웃는다. 전철이 멈춰 서고 사람들이, 아시아인들이, 흑인들이, 백인들이, 유럽인들이, 그리고 미국인들이 올라타고 각자의 언어로 이야기하거나 침묵한다.

다시 전철이 출발하고 유럽인이 묻는다. 그러니까, 너는 한국이 아닌 곳에서 한국말로 한국에 대해서 쓴단 말이지? 어, 돈이 많이 드는 습관이지. 나는 웃고, 유럽인은 안 웃는다. 하지만, 사실 나한테는 결벽증이 있어. 그게 뭔데? 내가 한국어로 뭔가를 쓰는 동안에는 내 한국어는 오직 글을 쓰는 데만 사용되었으면 좋겠어. 단 한 단어의 한국어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유럽인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니까, 글을 쓸 때 사용하는 말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과는 달라. 일상적인 말들은 예를 들어 농담이라거나, 나 우유 사러 가야 돼, 이건 얼마예요, 같은 말들, 그런 말들은 스스로를 의식하지 않는 말들이야. 그건 자연스럽고, 변덕스럽고, 때가 타 있어. 글을 쓸 때 나는 가능한 한 그런 말들을 치워놓으려고 해. 그러니까 내가 가진 모든 한국어를 표백해서 진공팩 속에 넣어두고, 일상적인 말들은 대충 외국어로 지껄이면서 지내는 거야. 물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어차피 외국어는 별로 말로 느껴지지 않아.

꿈? 비현실? 그때가 글쓰는 시간

아니, 그 이상이야. 이곳에서 만나고, 먹고, 이야기하고, 시장에 가고, 청소를 하는 모든 것이 별로 현실로 느껴지지 않아. 내가 두고 온 현실은 현실성을 잃어버렸는데 이곳에서 임시로 갖게 된 현실은 좀처럼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아.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는데 그것을 되찾으려면 아직 좀 더 기다려야 된대. 이런 임시상태가 나한테는 가장 글을 쓰기 좋은 상태야. 잠에서 깨어났는데 아직 꿈속에 있어. 그럴 땐 다시 눈을 감고 잠들고 싶어지지. 물론 언젠간 꿈에서 깨어나야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야. 지금은, 글을 써야 하는 때야.

김사과 소설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