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준 칼럼]남북경협과 국내정치

  • 입력 1998년 10월 30일 19시 30분


우리 시대 최고의 고승으로 꼽히는 성철(性徹)스님 열반 5주기가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는 보도에 접해 스님의 법어들 가운데 오늘날까지 잊혀지지 않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의 뜻을 되새기다가, 문득 최근 남북관계가 스님 말씀대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북한이 동해안의 물밑으로 잠수정들을 출몰시키며 우리에 대해 ‘도발행위’를 저질렀던 일은 그대로 접어둔 채, 평양을 방문중인 정주영(鄭周永)현대그룹 명예회장과 북한측 고위관계자사이에 금강산 공동개발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 정경분리 가시적 성과

확실히 남북관계는‘정(政)은 정이요, 경(經)은 경이로다’의 상황으로 가기 시작했다. 현대그룹이 대북 경제협력사업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평양에 연말까지 연락사무소를 두기로 북한측과 실무합의를 마쳤다는 보도가 만약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면 현 정부의 정경분리 원칙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것으로 평가받아도 좋을 것이다. 현대정유가 금강산 단지 안에 국내 정유업계 최초로 11월10일경 주유소를 개설하게 됐으며, 또 그것을 계기로 북한 전역으로 주유소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라는 보도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석유 부족에 시달리는 북한에 석유를 보태주고 북한 근로자들의 고용기회를 넓힐 수 있어 비록 부분적인 수준에서나마 남북경협의 진전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서독 사이의 고속도로 사업을 연상시킨다. 서독에서 서베를린으로 가려면 항공로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동독 땅을 지나가야만 했다. 서독은 서베를린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동서독 합작이란 이름아래 건설하면서 대체로 동독의 근로자들을 활용하는 등 실제로 많은 금전적 혜택을 동독에 주었다. 그러한 방식으로 서독은 동독으로 하여금 ‘위 필링(We Feeling)’, 곧 ‘우리는 하나라는 느낌’을 계속해서 갖게 만들어 소련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막았으며 동독 사람들로 하여금 서독의 발전을 인정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서독을 부러워하게 만들었다. 이 부러워함이 마침내 동독 사람들로 하여금 서독으로 합류해 들어가도록 만들었음은 1989∼90년 사이의 독일통일 드라마에서 이미 확인됐다.

▼ 민간교류 희소식 늘어

최근의 남북경협 분위기와 관련해 또 하나 흥미로운 대목은 일부 언론이 전하는 옥류관 분점의 서울 개점 계획이다. 옥류관이라면 북한이 자랑하는 평양냉면의 대표적 음식점이 아닌가. 지난 몇해 사이 귀순자들이 주로 수도권을 중심으로 북한식 음식점들을 열어 남쪽 사람들도 북한식 음식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고 북한주민에 대해 음식을 통해 어느 정도 친근감을 갖게 됐는데, 이제 옥류관 서울분점이 문을 열게 된다면 북한주민에 대한 친근감은 확산되지 않을까. 이 대목에서 우리는 지난날 음식점이 중소(中蘇) 관계의 맑고 흐림을 말해주던 일을 떠올리게 된다. 두 나라가 가깝던 시절 모스크바에는 중국식 식당이, 베이징(北京)에는 러시아식 식당이 각각 번창했다. 그러나 두 나라 사이가 냉각되면서 그 많던 상대방 식당들이 확 줄었고, 69년 우수리강변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던 시점에서는 각각 두어개 정도만 남았다.

그런데 문제는 평양에 우리 남한식 식당이 열릴 기미가 아직 안 보인다는 점이다. ‘월북자’로 하여금 남한식 식당을 열게 할 아량조차 없어 보인다. 그러니 언제쯤이면 한국의 어느 저명한 한식 음식점이 평양에 분점을 낼 수 있게 될 것인가. 그래도 남북한 음악인들이 11월3일부터 5일까지 평양에서 ‘윤이상(尹伊桑)통일음악회’를 열게 됐다는 낭보로 위로를 얻는다. 경제협력의 진전과 더불어 문화협력이 진전한다는 것은 확실히 고무적이다. 잘하면 남북관계가 60년대 초의 동서독관계 정도로 발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된다.

▼ 정쟁말고 내실 다질때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祖平統)의 공갈을 대하면 우리 국내 정치의 한계에 안타까워 하게 된다. ‘판문점 사건을 놓고 우리가 입을 열면 남조선의 여당이나 야당은 모두 함정에 빠지게 된다’는 무례한 협박을 받고도 아무 소리 못할 정도로 국내정치가 당리당략의 정쟁에 빠져있었으니, 이런 수준의 내정을 수리하지 않고 남북교류의 표면적 진전에만 현혹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평화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도 내실을 다지는 일에 힘써야 하겠다. 독일 통일의 위업은 내실을 다지는 데 훨씬 앞섰던 서독에 의해 성취됐다는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할 것이다.

김학준(인천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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