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광목]슬픈 일에도 格 잃지 말아야 선진사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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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목 회계사·미국 시애틀 거주
이광목 회계사·미국 시애틀 거주
최근 일부 재미 동포가 주동이 되어 모국의 대통령을 비난하는 광고를 뉴욕타임스 등 주요 신문에 싣고 대통령의 방문지를 따라다니며 자극적이고 저속한 용어를 사용한 시위를 하고 있다. 재미 한국인으로서 착잡하고 답답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다. 이들의 행동이 대부분 교민 생각을 대표한다거나 재미 교포들이 한국에 살고 있는 국민들보다 좌편향적이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미국에는 시민권을 얻어 북한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친북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말과 행동에 주목하는 교민들은 거의 없다.

한국에서는 이번 뉴욕타임스 광고와 일부 교포의 반정부 막말 시위에 민감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그런 반대 광고에 흔들릴 만큼 정통성이 허약한 정부가 집권하고 있는 나라가 아니지 않은가. 더구나 돈 주고 사서 하는 광고는 누구나 할 수 있다.

필자는 오히려 재미교포들이 벌이는 돌출행동의 이면에서 세월호 이후 극심한 대립과 갈등을 빚고 있는 한국 사회 내부의 모습을 본다. 반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건만 수그러들 줄 모르는 끝없는 정치싸움, 시신을 찾기 위해 열 명에 가까운 산 사람을 희생하고도 생명을 존중한다고 믿는 사람들, 끝을 모르는 거리시위, 일부 유족의 무절제하고 도를 넘은 행동 등등…. 양식과 보편적인 가치기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사건들로 가득한 한국 사회의 모습이 이번 뉴욕타임스 광고나 반정부 시위와 매우 비슷해 보인다. 집안싸움을 온 동네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하는 것은 성숙한 문화권이라면 어느 곳에서도 용납되지 않는 행위이다.

우리가 진실로 경계해야 할 것은 극소수의 일탈 행위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오히려 다른 나라 사람들의 웃음을 사는 일일 것이다.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해 추측 기사를 쓴 일본 신문기자를 한국 검찰에서 기소한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그 기사의 발단은 최초로 추측 기사를 쓴 한국 기자였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일본 기자는 정식 기소한 반면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한국 기자는 참고인으로 조사하는 데에 그쳤다. 외국인들 눈에 한국은 외국 기자를 차별하는 나라라는 것을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오게 마련이며 때로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그 부작용을 견디기 힘들다고 해서 어떤 물리적인 수단이나 강제적인 규정에 의존하는 것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사회의 모습이 아니다. 규정과 제도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공동체구성원들의 자율에 의해서 작동하는 사회, 그 자율의 수준이 곧 그 사회의 수준이며 국격(國格)인 것이다.

한국은 정부 주도의 압축적인 성장전략으로 단기간에 세계인들이 주목할 만한 성장을 이룩했고, 삼성 현대 등 대기업의 활약 덕분에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우리의 이미지는 곧 첨단기술을 떠올릴 정도로 개선되었다.

하지만 경제 분야를 제외한 여러 사회적 지표는 아직도 부족함이 많다. 물질적인 부문에서는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왔지만 선진국 사람들이 향수하고 있는 생활의 질을 누리려면 참으로 어려운 문턱을 넘어야 한다. 공동체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수준이 결국 그 사람들 수준으로 높아지지 않는다면 그런 사회는 실현될 수 없다.

터무니없는 음모론에 휘둘리지 않는 건전한 판단력을 보유한 사람이 주류를 이루는 건강한 사회, 참기 힘든 진실을 외면하고 음모론적인 설명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는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 양식과 보편적 가치기준에 입각한 건전한 판단력과 도덕관을 갖춘 사람들이 다수인 사회, 어려움과 슬픔 앞에서도 인간의 품위와 격조를 잃지 않는 사람들이 주류인 사회…. 이것은 정녕 상상으로만 끝나야 할 우리의 모습일까?

이광목 회계사·미국 시애틀 거주
#재미교포#세월호#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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