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송문호]제2 황제노역이 나오지 않으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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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호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송문호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일당 5억 원 ‘황제 노역’ 논란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식을 줄 모른다. 그러나 재벌이나 대기업 관계자의 1일 노역금은 과거 일당 1억 원에서 3억 원까지 선고된 경우가 있었다. 다만 허 전 회장은 액수가 과거보다 많을 뿐이다. 따라서 이런 문제가 재발할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형벌은 저지른 범죄에 대해 고통을 주는 속성이 있다. 벌금형은 교도소에 보내기에는 가혹하다고 판단되는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선고되고 보통 일당 5만 원의 노역금으로 환산된다. 가벼운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교도소에 보내는 대신 벌금형을 선고하는 것이 불필요한 신체 구속을 피하고 국가 재정에도 도움이 되는 장점이 있다. 벌금의 부과는 범죄자에게 충분히 고통으로서 위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사건에 따라 벌금형의 전체 액수만을 정하는 총액벌금제를 실시하고 있다. 벌금을 선고받으면 30일 이내에 일시불로 완납하여야 한다. 벌금을 ‘낼 수 없으면’이 아니라 ‘내지 않으면’ 노역장에 가게 된다. 경제적 사정을 고려해야 하는 규정도 없다. 재판부의 재량에 따라 노역장 유치기간이 정해지다 보니 하루 노역금이 고무줄 잣대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벌금을 내지 못해 노역으로 대체하는 경우는 1년에 약 4만 명으로 추산된다. 거의 대부분 돈이 없어 현재 생활이 어렵거나 미래가 불투명하고 몸이 성치 않은 사람들이다. 100만 원의 벌금이 그들에게 넘을 수 없는 장벽인 경우 결국 가진 것이 몸밖에 없어 몸으로 때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재력가에게 100만 원은 하룻밤 유흥비에도 못 미친다. 재력가가 과연 100만 원을 내지 못하여 노역장으로 가는 일이 있을까.

100만 원의 벌금이 주는 고통이 이렇게 사람마다 다르니 벌금형 제도를 근본적으로 고쳐야 한다. 단지 이번 일로 허 전 회장 벌금을 징수하고 일시적으로 성난 민심을 달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동일한 범죄에 벌금납입일수를 정하고 범죄인의 소득 등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여 액수를 정하는 일수벌금제도를 제안한다. 예를 들어 200억 원을 가진 재력가가 4000만 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면 20일에 걸쳐 하루 200만 원씩 매기고, 같은 범죄를 저지른 2000만 원의 재산을 가진 사람은 하루 2만 원 총 4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방법이다.

독일의 경우 5일 이상 360일 이하 그리고 다른 범죄가 합쳐졌을 경우 720일까지 일수를 정하고 범죄인의 수입 등 경제적 사정을 고려하여 하루 1유로(약 1500원)에서 3만 유로(약 4500만 원)까지 벌금을 내도록 하고 있다(독일 형법 제40조). 일수벌금제는 대다수의 유럽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고 벌금의 부과과정을 투명하게 하여 형사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다. 또한 형벌의 구체적, 배분적 정의를 추구하여 공정사회를 실현시킬 수 있다.

우리도 일수벌금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계속 있어 왔다. 그러나 매번 개인의 재산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제도 도입을 미뤄왔다. 하지만 개인의 재산상태를 가능한 한 정확히 파악하여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에 국가의 행정력을 집중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일 것이다.

국가는 대다수 서민과 급여생활자를 보호하고 지하경제를 최소화하여 경제민주화에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현재 우리의 부동산실명제, 금융실명제, 건강보험, 연말정산 등 개인의 경제적 상황에 대한 정보가 이전에 비해 훨씬 파악하기 쉬워졌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이러한 여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던 1975년 당시 독일 그리고 훨씬 이전 스칸디나비아 국가들도 이미 일수벌금제도를 시행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송문호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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