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형주]늙어가는 한국 수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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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6월 수출 증가율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상반기 전체로는 0.6% 증가했고 하반기부터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하지만 경제위기 등의 특별한 기간을 제외하면 줄곧 두 자릿수를 기록했던 우리나라 수출 증가율이 지난해 ―1.2%로 급락한 이후 아직도 뚜렷한 회복의 전기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리 간단히 넘길 상황은 아니다.

한국 경제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 비율이 50%를 훨씬 넘을 정도로 대외의존도가 높은 편인데, 내수시장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출 둔화가 빠르게 진행될 경우 경제 활력 저하에 따른 일자리 감소와 성장률 하락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 세계 경제 수요에 커다란 변화가 없었음에도 한국의 수출이 부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1차적으로는 주력 수출 제품의 시장 상황 악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동차, 석유제품, 철강, 선박 등의 수요가 주춤한 데다 중국 등 후발국들의 추격이 매서운 탓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나라 수출산업의 고령화가 더 큰 문제다. 어떤 산업도 영구적으로 성장과 성숙을 계속할 수는 없다. 시장 자체가 사라지거나 후발국에 주도권을 넘겨주면서 소멸하기 마련이며 모든 기업은 이런 상황에 대비해 기존 주력 분야를 대체할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 개발에 노력한다. 이런 대응은 국가 단위도 마찬가지다.

1970년대에는 가발, 합판, 신발 등이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이었지만 1980, 90년대를 거치며 전자제품, 반도체, 자동차 등으로 계속해서 고부가가치화를 추구해 왔다.

그런데 이와 같은 새로운 주력 수출 품목 발굴 노력이 언제부터인가 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수출은 10년 새 얼마나 달라졌을까. 올 상반기와 2003년의 10대 수출품을 비교해 보면 놀랍게도 컴퓨터와 영상기기 단 두 품목만 밀려났을 뿐 8개 품목은 그대로다.

반면 같은 기간 중국은 7개 품목이 새로 이름을 올렸으며 10∼30위권으로도 매년 새로운 품목이 유입된다. 이처럼 중국의 제조업은 역동적으로 바짝 뒤쫓아 오는데, 우리는 새로운 활로를 뚫지 못한 채 10여 년째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유망 산업 발굴과 육성이 절실하다. 그러나 과거와 같은 패러다임, 즉 정부가 시장 형성을 주도하고 투자를 지원하는 방식으로는 어렵다. 그런 면에서는 경쟁국인 중국이 우리보다 몇 배는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규모의 효과를 중시하던 단계에서 창의와 혁신이 중요해지는 단계로의 탈바꿈을 통해 후발국들과 경쟁할 새로운 무대와 룰을 만들어야 한다. 유형의 투자보다 무형의 투자를, 자본이나 설비보다 사람과 아이디어를, 앞서가는 몇몇 기업보다 관련 생태계의 안착과 유기적 협력을 중시하는 쪽으로 산업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는 뜻이다. 나머지는 이익을 좇는 기업들이 알아서 할 부분이다.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지금처럼 정치적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과연 이와 같은 큰 틀의 패러다임 전환이 순조롭게 이뤄질까 하는 부분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1930∼2010년 미국 사례를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정치권의 입법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는 상황에서는 타협과 양보를 통해 효과적인 대안에 도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치가 양극화되면 결정을 미루거나 회피하는 경향이 커져 입법 효율성이 크게 감소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2013년 한국 경제는 뒤처진 산업 생태계의 활력을 회복하고 새로운 유망 수출 업종과 성장동력을 발굴하기 위해 어느 때보다 적극적이고 새로운 형태의 정책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 한국 정치권이 관련 정책들의 입법 과정에서 미국과 같은 우를 범하지 않고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 구축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일조할 것을 기대해 본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수출#경제위기#일자리 감소#수출산업의 고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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