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정희]‘갑을’이 문제가 아니라 불황이 문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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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최근 남양유업과 배상면주가 등의 대리점에 대한 밀어내기식 영업 방식으로 우리 사회 갑과 을의 불공정한 거래 관계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일련의 사태는 어느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제조업체의 전속 대리점에 대한 밀어내기식 영업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첫째, 할당된 영업성과를 이루기 위한 무리한 영업 방식이 이유가 될 것이다. 그동안 성장에 익숙해진 기업이 저성장기에도 여전히 전년 동기 대비 성장을 요구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영업 전선에서는 단기적인 성과 위주의 무리한 영업을 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 우리 경제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경험했으나 이제는 2, 3%의 낮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획기적인 신성장동력을 찾기 전에는 예전과 같은 높은 성장률을 기대하기는 어렵기에 저성장기에 맞는 경영전략과 성과관리가 필요하다.

둘째, 대형 유통업체의 성장과 시장점유율 증가에 의해 대리점의 주 고객인 중소 유통업체가 침체하면서 대리점의 매출 하락과 수익 악화가 심화되고 있다.

셋째, 환율 하락으로 제조업체의 수출경쟁력이 저하됨에 따라 기업의 내수시장 의존도는 높아지고 국내 시장에서의 경쟁은 더욱 높아지면서 거래 관계의 갈등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거래 관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갈등은 제조업체와 전속 대리점뿐만 아니라 대형 유통업체와 납품업체, 가맹본부와 가맹점 사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편의점 가맹점주들의 계속된 사업 비관에 따른 자살 사건이나,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와 납품업체 간에 발생하는 갈등도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갑을 관계의 국민적 관심을 의식해 계약서에 갑을이란 표현을 바꾸는 등 업계 움직임이 있으나, 중요한 것은 국민의 눈총을 피해가기 위한 얄팍한 변화가 아닌 진정한 인식과 자세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 환경이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제조업체와 대리점 간의 갈등에 대한 해결점은 어려움을 함께하고 협력하는 진정한 동반자적 관계를 구축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대리점을 위한 시장이 크게 어려워진다면, 이 시장이 커질 수 있도록 제조업체가 적극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동네 슈퍼마켓 같은 중소 유통업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제조업체도 능동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중소 유통업체는 대리점의 주요 고객이기 때문이다. 이들 중소 유통업체의 시장 퇴출이 증가하면 전속 대리점은 시장의 기반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 경우 제조업체의 판로가 소수의 대형 유통업체로만 집중되면서 그 입지가 좁아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제조업체는 상품을 공급하는 데 그치지 말고 지역 거점의 전문도매업체로서 중소 유통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갖도록 납품가를 조정하고, 필요하다면 경영지원 노하우도 제공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시장 감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공정거래위원회를 포함한 농림수산성, 경제산업성 등 관련 부처가 시장의 불공정거래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불공정거래 백서 발간 등으로 시장의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전방위적 감시를 증대시켰다. 이에 따라 매년 불공정거래 고발 건수가 감소했다.

지금의 제조업체와 대리점 간의 갈등이 유통시장의 독과점 구조가 심화되면서 나타난 결과로도 볼 수 있기에 유통시장의 독과점 폐해를 막기 위한 정책적 노력 또한 중요하다. 앞으로 우리 경제는 성숙 단계로 들어가면서 저성장 기조에 직면할 우려가 크고, 수출 또한 환율 하락과 세계경제 침체 등으로 어려움이 예상된다. 이런 어려운 환경에서 거래 관계의 동반자적 자세는 더욱 필요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갑의 지위는 영원할 수가 없기에 갑의 특권을 내려놓는 것이 장기적인 경쟁력임을 알아야 한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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