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인남식]가자지구, 봄날은 아직 멀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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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가자지구의 교전이 멈췄다. 국제사회는 안도했다. 그러나 언제 다시 폭발할지 모르는 잠정적 안정이다. 정전이란 교전의 ‘일시적’ 정지와 다름없다. 당사자가 합의하고 국제사회가 보장하는 영구 평화가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팔레스타인 땅에 평화가 영구히 정착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일까? 불행히도 현재로서는 그렇다.

이스라엘은 완강하고 팔레스타인은 분열되어 있다. 보수 연정이 이끄는 이스라엘은 협상에 강경하다. 하마스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대화의 한 축인 팔레스타인 지도부는 파타와 하마스로 분열되어 있다. 더욱이 하마스는 이스라엘 소멸이라는 정강정책을 버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서로의 공존을 인정할 수 없다면, 잠시의 휴전은 큰 의미가 없다. 이 땅에서 분쟁은 늘 정치의 도구로 이용된다. 불행은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이다.

최근 이스라엘은 그 어느 때보다 위기임을 감지하고 있다. 이란의 핵 개발은 공포 그 자체다. 여기에 아랍의 봄으로 인해 지난 30여 년 동안 간신히 구축해 놓은 이웃 아랍국과의 평화관계가 한꺼번에 흐트러졌다. 이집트 혁명 이후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 재검토를 요구하는 이집트 국민들의 소리가 빗발친다. 요르단도 불안하다. 이스라엘과 가장 긴 국경을 두고 마주하는 요르단에서 정치변동이 일어나면 이스라엘의 안보는 크게 흔들린다. 여기에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극도의 혼란까지 덧대어져서 이스라엘의 사면이 온통 적대적 정권으로 바뀔지 모른다는 공포가 커지고 있다.

안보 위기감의 고조와 맞물려 이스라엘 보수 연정은 승부수를 던졌다. ‘방위의 기둥’이라는 작전명으로 가자지구 공격에 나섰던 것이다. 하마스의 로켓 공격은 늘 있었으나 이스라엘은 이번엔 비대칭적으로 강한 반격에 나섰다. 해석은 분분하다. 눈길을 끄는 것은 내년 초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의 보수 심리를 결집시키려 했다는 설이다. 내부적으로는 경제위기, 높은 실업률 및 성직자 군면제법 관련 불만 폭등 등으로 인해 사회 혼란이 가중되고 있었다. 여기에 이스라엘과 껄끄러웠던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이 겹치면서 네타냐후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최근 이스라엘의 행보는 이런 불안정한 정치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한편 하마스는 고무되었다. 무엇보다 하마스와 뿌리를 같이하는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의 집권은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최근 요르단과 시리아 그리고 리비아를 잇는 무슬림형제단의 네트워크가 점차 활성화된다는 소문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마스는 더이상 팔레스타인의 한 정파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제는 주요 아랍국의 집권세력과 연대하는 정치적 실체로 자리매김하려 한다. 동시에 이란과의 고전적인 관계도 유지하면서 물적 지원을 계속 얻는 몸놀림을 보여주고 있다. 하마스는 강하게 치고 나왔다. 텔아비브까지 공격했다. 이스라엘에는 고스란히 부담이다.

이번 분쟁 중재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이가 있다. 일약 스타로 떠오른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이다. 하마스를 비롯한 아랍 전역의 무슬림형제단 계열에 무르시는 작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이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중재에 나섰고 미국은 무르시의 외교를 한 발짝 물러서서 지켜보았다. 미국은 이제 무르시의 이집트를 통해서 아랍의 평화와 균형을 추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미국은 2년 전만 해도 불법 정치집단으로 규정했던 무슬림형제단과 이제 무척 가까워졌다. 이들과 함께 중동의 평화를 논의하고 있다. 이에 무르시는 치우치지 않는 균형외교로 화답하며 국제사회에 깊은 인상을 남기려 하고 있다. 생경한 그림이다. 세상은 불과 2년 사이에 크게 변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가자지구#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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