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응렬]문제는 치안(治安)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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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응렬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최응렬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제67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이 열린 지난달 19일을 전후해 대선후보들이 다양한 치안공약을 쏟아냈다. 그러나 국민은 냉소적이다. 공약들이 피부에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美 ‘범죄자문위’ 설치후 범죄 급감

불과 한 달 전 온 사회를 들끓게 했던 국민적 관심은 아동과 여성을 강간하고 살해했던 범죄자들이었다. 대선후보의 공약은 국민의 바람을 정책화한 것으로 당선 이후 실현해야 할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범죄나 범죄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살고 싶다는 국민의 바람을 담은 치안공약은 검경 수사권 조정 등에 밀려 우선순위에서 뒤처지고 있다.

수사기관에서 보고한 우리나라 범죄 통계는 참담하다. 연간 범죄 발생 건수가 1989년에 100만 건에 달하더니 2005년부터는 200만 건을 훌쩍 넘어섰다. 살인·강간·방화와 같은 강력범죄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해 봤더니 살인 발생률은 6위, 성폭행 발생률은 13위인 나라가 대한민국이었다. 일본은 살인과 성폭력이 34개국 중 각각 34위였다.

우리나라가 범죄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또 다른 지표는 통계청의 사회조사 결과다. 2010년 우리나라의 치안이 불안하다고 응답한 국민이 63.2%에 달했다. 이젠 우리나라가 안전한 나라가 아니라는 현실을 인정할 때가 되었다.

미국의 36대 대통령이었던 린든 존슨은 1965년 3월 8일 치안 문제가 미국의 중요 정책의제임을 밝히는 친서를 의회에 보냈다. 존슨 대통령과 의회는 치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으로 ‘범죄자문위원회’를 설치했다. 범죄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미국 사회는 이후 범죄발생률이 현저하게 감소하는 성과를 거뒀다.

치안 상태가 좋은 일본도 국민의 삶의 질을 보다 높이기 위해 2003년부터 내각총리대신 소속으로 ‘범죄대책각료회의’를 설치했고 치안 문제와 관련된 모든 부처가 이에 참여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선진국일수록 치안 문제는 국가 정책의 중요 의제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 대선후보들은 유권자의 정치적 수요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듯하다. 저명한 심리학자인 에이브러햄 매슬로가 주장한 욕구단계 이론에서 인간은 배고픔, 질병, 빈곤 등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면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인 안전하게 살고 싶은 욕구로 발전한다고 한다.

놀랍게도 생리적 욕구의 충족 기준은 대략 국내총생산(GDP) 2만 달러다. 따라서 우리나라 대부분의 유권자는 정치적인 논쟁보다는 안전한 삶에 대한 공감대가 더 폭넓게 형성돼 있는 것이다. 뉴욕의 치안 문제를 해결했다는 이유만으로 미국 대선에서 유력후보로 떠올랐던 루돌프 줄리아니 전 시장의 사례는 대선에서 치안공약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선후보들, 치안공약부터 제시를

미국 대선의 치안공약은 종합적이고 입체적이다. 정치적인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미국 대선의 치안공약에는 범죄정책의 기본 방향이 설정되어 있다. 학교폭력, 가정폭력, 아동포르노 대책 등 유권자의 요구에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공약부터 범죄피해자의 구제 및 지원과 같은 국가 차원의 치안공약까지 매우 다양하다.

이처럼 치안공약이 대선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미국의 정치권이 치안 문제를 중요 국가의제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유권자의 정치 수준도 미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부디 정치권은 유권자의 눈높이에 맞는 치안공약을 하루빨리 제시해 주길 바란다. 그렇다고 지엽적이고 뜬구름 잡는 식의 치안공약은 사양한다. 대통령이 된다면 ‘국가범죄대책위원회’를 설치해서라도, 국민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선언적인 공약이라도 밝히는 것이 유권자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최응렬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대통령 선거#치안#범죄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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