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나영일]농구계 집단비리가 만들어지는 속사정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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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일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
나영일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
부끄럽고 통탄스러운 일이 농구계에 벌어졌다. 전국 초중고와 대학, 실업팀 농구경기에서 농구협회 관계자, 심판, 감독, 코치, 학부모 등 무려 151명이 유리한 판정과 우승을 대가로 한 뇌물수뢰와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적발되었다고 한다. 프로농구 심판도 ‘유리한 판정’의 대가로 금품을 받았다니 말이 나오지 않는다.

고대 로마의 풍자시인 유베날리스가 타락한 로마인들을 향하여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들기를 기원하라고 설파한 것과 정반대의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러고 보니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세계 5강을 이루었다고 온 국민이 기뻐할 때 농구는 예선전에서 패배하여 본선이 열리는 런던에도 가지 못한 4개 종목 중 하나였던 것이 다 이유가 있었다.

아마추어 농구계 비리가 만들어진 직접적인 원인은 비정규직 지도자들과 심판들의 고용불안이다. 실제로 농구 지도자들과 심판의 연봉은 매우 적다.

하지만 그 외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농구 감독과 코치는 비정규직으로 교육청이나 대한체육회 또는 학교 소속으로 되어 있다. 2012년 현재 초등학교 농구선수는 708명이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로 가면서 약 100명씩 탈락해 대학교에는 304명의 농구선수만 등록되어 있다. 초중고 농구팀 수가 50여 개씩이고, 대학은 28개밖에 안되며, 실업팀까지 합해도 대한체육회에 가입된 농구팀은 202개밖에 안 된다.

공부와 담쌓은 대부분의 선수들은 운동기계로 전락하고 농구선수 출신의 코치, 감독, 심판들은 지도자가 되어도 농구 관련 이외의 직장을 찾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들만의 폐쇄된 구조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20명의 전임심판이 부정을 저지를 환경이 너무도 잘 구축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체육 특기자 선발에 따른 제도적 비리와 행정시스템에 있다. 농구 감독과 코치들이 심판들에게 상납한 돈은 학부모들의 것이다. 선수와 학부모는 지도자들의 억압과 착취라는 먹이사슬 구조에서 가장 아래에 속한다. 선수와 학부모는 상급학교에 진학하거나 프로에 입단하기 위해 코치와 감독에게 ‘돈’이라는 먹이를 제공한다.

또 코치와 감독은 승리하기 위해 심판을 매수하고, 우수한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를 함께 끼워 대학이나 프로에 진출시키려고 한다. 협회 관계자들은 불법인 줄 알면서도 심판배정 등의 방식을 통해 이들을 통제하고 있다. 불법적인 특기자 선발과 부정한 돈거래를 통한 선수 스카우트 관행이 오래되었음에도 그 누구도 관리감독의 책임을 지지 않았다.

학교스포츠행정도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과학기술부로 이원화되어 종합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다. 문제가 생기면 협회와 개인의 문제로 덮어버렸다. 예전에는 일부에서만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 이제는 거의 모두가 한통속이 되어 불법을 저질렀다. 이런 일이 농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한 과감하고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한 때이다. 그동안 정부와 국민 모두 국가주도의 엘리트스포츠를 통하여 겉으로 드러난 화려한 성과만을 좋아했지 부정한 방법으로 안으로 썩어가는 스포츠계에 대해서는 무신경했다. 스포츠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스포츠계의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그것은 아마추어정신을 부활하는 것이고,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양성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코치와 감독이 선발에 전권을 휘두르는 현행 특기자 제도를 확 바꾸어야 한다. 문화부와 대한체육회도 각 대학에 나눠주고 있는 운동선수 훈련비가 스카우트 비용으로 전용되지 않도록 막는 등 감시해야 하고, 대학입시와 프로 입단을 미끼로 불법을 저지르지 않도록 코치, 감독, 심판 양성 시스템 등의 제도를 정비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나영일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
#농구#비리#아마추어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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