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석우]北 인권개선해야 식량난 풀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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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우 전 통일원 차관
김석우 전 통일원 차관
한국의 일부 정치인은 북한의 식량난을 해결하기 전에는 인권 문제를 제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권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창피스러운 궤변이다.

1948년 세계인권선언 채택 과정에서 냉전체제하의 동서 양 진영은 자유권적 기본권과 생존권적 기본권 양자가 서로 배치되거나 우열관계에 있지 않다는 데 콘센서스를 이루었다. 어느 한쪽 기본권에 결함이 있으면 다른 쪽도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확인했다.

“대량 아사사태는 독재체제 탓”

199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마르티아 센 교수는 명쾌하게 설파했다. “지구상의 대량 아사사태는 식량이 없어서가 아니라 독재체제이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 만약 그 사회에 정부를 비판할 자유가 있다면 그 정부는 주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그리 되면 대량 아사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그것이 바로 북한 주민들이 표현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을 향유해야 할 이유다. 북한 정권이 진정으로 주민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면 농업정책을 바꾸게 되고 식량 생산은 늘어나게 된다. 중국은 개혁·개방 2년 만에 먹는 문제를 해결했다. 북한이 장거리미사일 한 발 실험하는 데 날려버린 8억5000만 달러로 3년 치 식량 부족분을 구입할 수 있다.

북한의 만성적인 식량 부족은 결코 남한에서 지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주민들에게 최소한의 기본권도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권위주의 시대를 기억해 보라. 언론은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였고, 그것이 민주화와 경제 근대화를 촉진했다.

한국의 민주화 투사라고 자처하는 정치인들은 인권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들은 남한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투쟁했다고 자랑하면서 북한 주민의 심각한 인권 유린에 대해서는 왜 외면하는가? 그러한 이중적 태도는 자신의 양심과 인격을 부정하는 것이다. 북한인권법 제정이 주권 침해나 외교적 결례가 된다고 하는 것은 마치 유대인 학살 만행도 나치 독일의 주권사항에 해당한다고 변명해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과 도쿄 군사재판, 유고 전범재판, 르완다 전범재판도 외교적 결례라고 비난할 것인가? 리비아 카다피 정권의 주민 학살행위도 국가 주권 이론으로 보호되지 않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카다피 정권을 제재하기 위해 나토군이 개입했다.

심각한 인권 침해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촉발시킨 원인이었다는 반성에서 1945년 성립한 유엔체제는 인권의 보편성을 확립했다. 국경에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자유와 존엄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보편성 원칙을 부정하는 한국 정치인은 얼마나 인권에 무지한가를 선전하는 것이다. 아니, 그들은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많은 아사자를 내고도 꿈쩍하지 않는 북한 정권의 편을 들고 있다. 북한 주민의 고통은 안중에 없다. 그렇기에 탈북자들을 배신자라고 속마음을 내뱉고 있다.

인권위, 정부와 사회의 노력 권고

2003년부터 수년간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 한국 정부대표가 기권했고, 국가인권위원회는 북한의 인권 문제를 외면하는 결정을 발표해서 전 세계의 조롱거리가 된 적이 있다. 2010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입장을 다시 정리하여 북한 주민의 알 권리를 지원하기 위해 한국 정부와 사회가 노력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북한인권법 제정도 국가인권위원회의 정상화된 권고에 따라 인권의 보편성을 북한에도 확산하는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실은 기본적 인권이 보장되고 독재가 마감될 때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도 가능하고 통일도 가능하다. 북한 주민들의 먹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물론이다.

김석우 전 통일원 차관
#북한#인권개선#식량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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