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현진/신념있는 생활인이 아름답다

  • 입력 1999년 8월 29일 19시 32분


머리가 어지럽고 손끝이 떨려오고

숨막혀 버릴 것 같은 그 누군가가 나타나면

그대 모든 것을 바쳐

철저히 사랑해야 한다.

지난 여름 우덕현의 산문집에서 읽은 이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사랑을 한다면 이런 사랑을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정말 가슴이 쿵쾅거리고 숨이 멎어버릴 것 같은 사람을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으니 말이다.

▼사랑은 몰입이자 공명▼

사랑은 스스로 증명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랑에는 떨림이 있고 그리움이 실재한다. 뜨락에 내리는 햇살을 보아도 가슴이 시리고, 뒤꼍으로 지나는 바람소리에도 그 사람이 보고 싶고 애닯다. 어찌보면 사랑은 24시간 지독하게 그 일에 몰입하고 그 사람의 존재를 확인하는 공명(共鳴)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구나 사랑하는 일을 통해 그리움의 배경은 노을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사랑은 사소한 일조차도 간절한 일상으로 만드는 어떤 힘이 있다.

이러한 자세는 사랑하는 일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살아가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일이든 열정적으로 온 몸을 던져 집중한다면 삶 자체가 그렇게 힘들거나 실망스럽지 않을 게다. 어느 날 물기없는 나무마냥 삶이 시들시들해지고 그 무게에 지칠 때 사랑하는 일을 떠올린다면 어느 정도 위안이 되리라 믿는다.

사랑하며 사는 일은 자기 일에 관심을 돌리는 일이다. 다시 말해 남의 삶과 견주어보는 일상의 습관을 바꾸라는 의미다. 우리는 비교의 구조에 너무 익숙해져 있고 그 논리에 마치 무슨 환자처럼 중독돼 있다. 상대와 자꾸 비교하면 그때부터 내 주위는 더욱 초라해지고 빈곤해진다. 우리의 존재가치는 절대적인 자기 몫이다. 그래서 불교는 우리 사는 모습을 연기적(緣起的) 관계로 규정하고 있다. 상호상조 공존공생하는 연기의 바다에서는 아집과 독선을 철저히 배격한다. 자연도 다를 리 없다. 인간중심의 개발과 보호는 더불어 존재하는 연기의 그물을 파괴하는 것과 똑같다.

사랑은 비교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자신들의 인연을 지상 최고의 지고지순으로 여긴다. 아름다운 시절을 꿈꾼다면 내 인생을 절대로 남과 비교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러니까 타성적인 직업인 보다는 자기 신념에 사는 생활인이 더 아름답다는 뜻이다. 그리고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삶을 사는 것도 우리에게는 꼭 필요하다.

언젠가 여행을 하면서 도반스님이 운전하는 자동차를 탈 기회가 있었다. 이 스님은 음악을 들을 때 소리를 크게 높이고 들었는데, 한번은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때 도반은 ‘음악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음악을 들을 때에도 그 일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도반을 보고 수행자의 생활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 이처럼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순간순간을 사는 일이 아닐까 싶다. 현재의 이 순간 속에 자신을 불태우는 것, 이것이 구도의 정신일 것이다.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

生也全機現 死也全機現(생야전기현 사야전기현·살 때도 온 힘을 다하고 죽을 때도 온 힘을 다 써라).

중국의 대혜선사 법어인데, 온 힘을 다해 삶을 살 때만이 후회없는 죽음을 맞이한다는 말이다. 알고 보면 사람이 불행하다는 것은 다른 의미가 아닐 것이다.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여길 줄 모르고 흘려보내는 삶을 사는 사람이 진짜 불행한 사람이다. 그래서 인생을 낭비하고 시간을 소비한 죄가 가장 무겁고 또 무섭다.

꽃이 어디서나 아름다운 이유는 순간순간 자기 할 일을 다하기 때문이 아닐까. 진부한 말 같지만 자신의 일에 몰입하면서 땀 흘리는 사람은 진정 꽃보다 아름답다.

애절한 사랑은 1분1초가 아쉽고 소중하다. 우리도 이같이 살 일이다. 시간시간 모든 것을 바쳐 철저히 사랑한다면 사바세계에서 주인공이 되는 것은 진짜 시간문제다.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

미래만을 기약하지도 말라.

과거는 이미 버려진 것이고

미래는 약속된 것이 아니다.

현재를 살펴 오늘에 충실하라.

죽음은 바로 내일 찾아올 수도 있다. (중부경전)

현진<청주 관음사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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