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메트로 像像]태조 이성계는 왜 의정부역을 지키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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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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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의정부시 전철 1호선 의정부역 앞 행복로. ‘의정부의 명동’이라 불릴 만큼 지역 핵심 상권이다. 길 건너에는 화려한 백화점이 있고 주변 상가에는 흥겨운 음악이 흘러 나왔다. 커피 전문점과 휴대전화 가게가 한 집 걸러 한 집씩 있는 젊음의 거리다. 음식점과 옷가게, 신발가게에도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2009년만 해도 이곳은 자동차가 다니던 번잡한 도로였지만 의정부시가 그해 12월 차 없는 거리로 조성했다. 이름도 중앙로에서 행복로로 바꿨다. 지금은 소나무숲길, 연못, 분수대 등이 조성돼 시민들의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주말에는 거리공연이 펼쳐진다.

행복로가 조성되면서 입구에 낯익은 이름의 기마상 하나도 함께 세워졌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1335∼1408)의 청동 기마상(사진). 동상을 받치는 기단 높이가 2m, 조각상도 3m로 총 5m에 달해 웅장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말에 올라탄 이성계는 힘차게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왜구를 토벌하던 이성계의 영웅적인 기질과 당당한 모습을 표현했다. 당장이라도 적장을 향해 달려들 듯 말의 힘줄 하나하나까지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서울 예술의전당 야외조각공원에 세워진 ‘백두사람 한라사람’을 조각한 이민수 작가의 작품이다.

지난해 대선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이 기마상 앞에서 유세를 하면서 유명해지기도 했다. 지금도 기마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의정부시와 이성계의 인연은 6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둘째 아들 방과(정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함흥으로 떠난 태조는 왕자의 난을 일으켜 왕위를 빼앗은 방원(태종)과 갈등을 빚었다. 방원의 간청으로 우여곡절 끝에 1403년 환궁을 결심한 이성계는 한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현재 의정부시 호원동에 잠시 머물렀다. 대신들이 이곳에 찾아와 국정을 논의하고 태조의 윤허를 받았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당시 조선시대 최고 의결기관의 이름을 따 ‘의정부’라고 불렀다. 또 호원동 일대를 일컫는 ‘회룡’이라는 지명 역시 이성계가 ‘돌아왔다’는 의미에서 처음 사용됐다고 전해진다.

조영달 기자 dalsarang@donga.com
#의정부#이성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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