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고맙습니다, 乙의 해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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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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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하도급부조리센터 1년도 안돼 139건 26억원 해결
공사장 임금-대금 떼인 경우 등 소송도 어려운 소액 많아

윤귀현 씨(66·여)는 서울 양천구 신정동의 33m²(약 10평) 크기 상점에서 반찬가게를 운영했다. 반찬이 맛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인근 신정3택지지구 공사 현장 인부들에게 하루 세 끼 식사 제공을 제안받았다. 손님이 많이 올 것이란 기대에 한 끼 밥값을 4000원으로 내리고 매월 돈을 받기로 했다.

시공업체 4곳은 공사를 마친 뒤 2, 3개월 식대 336만 원을 주지 않은 채 잠적했다. 계약서도 없고 달랑 명함 한 장뿐이었다. 식대 같은 소액은 시간과 비용 때문에 소송을 하기 어렵다는 것을 악용한 사례였다. 윤 씨에게는 몇 달치 생계를 좌우하는 금액이었다.

윤 씨는 서울시 하도급부조리센터에 지난해 8월 이를 신고했고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서울시는 시행사와 협조해 업체 4곳을 추적해 돈을 받아냈다. ‘벼룩 간을 빼 먹는다’는 따가운 시선에다 서울시의 끈질긴 압박에 시달린 공사업체는 밀린 식대를 모두 지급했다. 임춘길 서울시 하도급개선담당관 주무관은 “워낙 사정이 딱한 데다 나쁜 관행이라 끈질기게 독촉했다”고 말했다. 윤 씨는 “음식값을 못 받을까봐 노심초사했는데 이제 마음을 놓았다”며 감사 인사를 연발했다.

○ 춥고 시린 불경기에 신고 건수 늘어

이처럼 ‘갑’에게 당한 ‘을’의 민원을 해결해주는 서울시 하도급부조리센터는 지난해 3월 문을 열었다. 공사현장에서 임금이나 납품 대금을 떼인 억울한 사람들의 해결사를 자처한다. 서울시청 로비를 포함해 자치구 25곳과 산하 SH공사, 시설관리공단 등 34곳에 설치됐다.

지난해 접수된 민원은 모두 151건. 이 가운데 139건을 해결해 억울한 ‘을’이 26억9100만 원을 받을 수 있게 해줬다. 한 달 평균 12.5건 정도였던 민원이 올해 1월에는 16건으로 늘었다. 권기홍 하도급개선담당관은 “경기가 좋지 않아 불법적인 일도 늘다 보니 하도급업체와 인부들이 혹독한 겨울을 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민원 내용은 건설장비 납품대금 미지급이 전체 50%(75건)를 차지했고 임금 체불이 23%(35건), 공사대금 미지급이 21%(32건) 순이었다. 피해 금액은 1000만∼5000만 원이 34%(51건)로 가장 많지만 500만 원 이하 민원도 40건(26%)에 달한다.

○ 재하도급 업체 피해

시공사(원도급)→하도급→재하도급으로 갈수록 불법행위가 늘어나는 것도 문제다. ‘을’이 될수록 이윤이 적은 데다 재하도급부터는 법 테두리 밖에 있어 보호받기 어렵다. 지난해 민원 가운데 시공사가 문제를 일으킨 경우는 51건(34%)인 데 비해 하도급자가 문제를 일으킨 경우는 100건(66%)으로 훨씬 많다.

전응석 씨(50)는 지난해 8월 서초구 우면동 A아파트 공사를 하는 재하도급자인 D사에 장갑과 삽 등 공사현장용 물품을 납품했다. 그러나 D사는 자신의 윗선인 하도급자 Y사로부터 공사대금 3400만 원을 받자마자 전 씨의 몫까지 챙겨 달아났다. D사는 폐업했고 전 씨는 1500만 원을 고스란히 떼였다. 서울시가 계약서를 확인했더니 D사와 Y사 사이에 대금지불에 연대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었다. 전 씨가 파악할 수 없던 내용이다. 시행사 시공사는 관계자 대책회의를 열어 대금을 분담 지급했다.

사실 공사 현장에서 밀린 대금이나 임금을 지불하도록 강제할 법은 없다. 시가 발주한 공사가 아니면 개입을 하기 쉽지 않다. 하도급자가 원도급자와 계속 거래를 하기 위해 피해를 감수하기도 한다. 권 담당관은 “임금을 하도급자에게 바로 지급하는 하도급직불제와 납품업자 누구나 쉽게 핵심 내용과 권리를 알 수 있는 표준계약서 작성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며 “모든 공사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계속 알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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