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출소하면 이제 가장노릇 자신있어요”

  • Array
  • 입력 2012년 1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성동구치소-기업 협력 ‘취업 연계형 교도’ 시행

5일 서울 송파구 가락동 성동구치소 내 위탁작업장에서 나라물산 신왕수 사장이 재소자
에게 옷 만드는 작업을 가르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5일 서울 송파구 가락동 성동구치소 내 위탁작업장에서 나라물산 신왕수 사장이 재소자 에게 옷 만드는 작업을 가르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5일 오후 서울 송파구 가락동 성동구치소. 굳은 표정의 교도관을 따라 두꺼운 철문 6개를 열고 들어가자 ‘선한 마음으로 다가서면 이 세상에 나쁜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팻말이 걸린 긴 복도가 나타났다. 한기(寒氣)가 느껴지는 복도를 따라 4개의 철문을 더 지나자 경쾌한 재봉틀 소리를 내는 작업장이 나타났다. 이곳에선 죄수복을 입은 20∼40대 남성 10여 명이 재봉틀 앞에 앉아 운동복 셔츠를 만들고 있었다. 추운 날씨였지만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집중하고 있어서인지 일부 재소자 이마엔 땀이 배어 있었다.

성동구치소는 일반 제조업체와 함께 재소자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출소 후 일자리까지 마련해 주는 ‘취업 연계형 교도작업’을 시행 중이다. 지난해 초 법무부의 지원을 받은 성동구치소가 가장 먼저 시작했으며 현재 전국 6개 교정시설이 이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성동구치소에는 경제·폭력·절도사범 등 미결수 및 형기 5년 이하 초범 수형자들이 수용돼 있다.

작업장에서 만난 재소자들은 출소 이후에 대한 불안감보다 기대감이 더 컸다. 9개월간 재봉틀 기술을 배우고 12일 출소하는 박모 씨(43)는 벌써 일자리를 구했다. 박 씨는 “부도를 내고 도망 다니다가 징역 3년형을 받았을 땐 절망에 빠져 있었다”면서 “이젠 먹고살 기술을 배우고 일자리까지 구하니 아내와 딸 앞에 든든한 가장으로 설 수 있게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성동구치소를 나온 재소자들은 서울 중랑구 망우동 의류공장 ‘나라물산’에서 일하게 된다. 구치소 관계자는 “봉투 접기 같은 단순 작업은 출소 이후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아 재소자들도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며 “봉제 기술처럼 취업에 도움이 되는 기술을 가르치다 보니 열심히 배운다”고 말했다. 성동구치소는 지난해 5월 희망자 7, 8명을 뽑아 2주간 교육했고 성과가 좋아 현재 10여 명이 위탁작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에게 손을 내민 사람은 나라물산 사장 신왕수 씨(38)다. 신 씨는 1991년 고등학교 때 동네 친구들과 낚시를 갔다가 옆 마을 청년들과 사소한 일로 싸움을 벌이다가 조직폭력배로 오해받아 두 달간 구치소에서 미결수로 생활했다. 신 씨는 “당시 어머니가 아들이 큰 죄를 지은 줄 아시고 충격을 받아 돌아가셨다”며 “어머니께 속죄하는 마음과 함께 출소 후가 막막한 재소자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 지원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먼저 나라물산에 취직한 출소자들은 동료 직원들의 배려 속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사문서위조 혐의로 6개월간 복역한 김모 씨(60)는 “직원들과 신나게 일하며 땀 흘린 만큼 돈 버는 재미에 빠져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며 “우리에게 이곳은 단순한 직장이 아니라 꿈이 영글어 가는 곳”이라고 말했다. 동료 직원 유모 씨(44)는 “김 씨는 아직 경험은 짧지만 매사에 열심인 데다 표정도 밝아 같이 일할 맛이 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서울시도 재소자들이 출소 후 절망에서 벗어나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서울시 일자리플러스센터는 나라물산이 서울시의 ‘예비 사회적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컨설팅을 해줬다. 취약계층인 출소자를 채용하는 예비 사회적 기업이 되면 직원 1명당 98만3000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일자리센터 원유만 상담사는 “회사도 지원금을 받아 출소자 고용에 따른 부담과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열의가 있는 출소자들은 실력이 빠르게 늘어 생산성도 금방 향상된다”고 강조했다.

성동구치소와 서울시 일자리플러스센터는 앞으로 교정사업을 더욱 확대할 방침이다. 정명철 성동구치소장은 “여러 기업에서 선입견을 버리고 많이 참여해 준다면 일할 수 있는 인력은 충분하다”며 “특히 기술을 익히는 것은 출소 후의 기본적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계기이며 안정적 삶을 제공하니 재범 방지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태웅 기자 piba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