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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최진석 교수 “남 생각 외우고 따라하기만으로는 선진화 벽 넘지 못한다”

입력 2015-01-05 03:00업데이트 2015-01-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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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기자의 사람이야기] 인문학 학교 문 여는 최진석 교수
새해를 코앞에 둔 지난해 12월 29일 만난 최진석 교수. 그는 “지구상에서 드물게 민주화 산업화에 성공한 한국은 이제 선진화라는 매우 어려운 과제를 앞에 놓고 있다”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우리만의 상상력이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철학자를 새해 첫 인터뷰 상대로 정한 이유는 새해를 맞아 대한민국 앞날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노장철학 전공자로 인문학 분야 스타 강사로 꼽히는 서강대 철학과 최진석 교수(56)이다. 평소 “새 시대 한국에 맞는 메시지가 노장철학에 있다”고 말해온 그는 문득 영화 ‘인터스텔라’ 이야기부터 꺼냈다.

“감동을 받은 한편으로 지구상에서 지금 이런 수준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나라가 미국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생각의 깊이와 폭이 나라 수준을 결정하는 시대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다른 나라들이 만든 철학을 따라하거나 습득하려고만 애쓰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생각을 선도하는 나라가 선진국

그는 선진국을 “생각을 선도하는 나라”라고 정의했다. “경제나 기술 발전 수준으로 선진국을 가를 수 있겠지만 나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상상력을 기준으로 가르고 싶다. 남을 선도하는 생각, 선도력(先導力)을 가진 나라가 선진국이라고 본다.”

“그것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고 묻자 긴 설명이 덧붙여졌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 해보지 않은 생각을 시도하는 것에서 만들어진다. ‘창조’적인 힘인데 ‘창조’는 ‘인간의 동선(動線)을 세밀하게 읽은 뒤 어떤 개념으로 구체화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스마트폰을 만들어낸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이다. 삶에 대한 집요한 탐구가 있었고 그것을 개념으로 구체화시킨 결과물이 아이폰이다. 아이폰을 만들기 전 집요했던 잡스의 인간에 대한 탐구, 이 지점이 철학과 인문학이 개입되는 지점이다. (실제로 잡스는 동양의 음양사상, 선 철학에 심취했다.) 인문학을 할 때 ‘인문(人文)’, 즉 삶이 그리는 무늬란 것은 ‘인간의 동선’이란 말을 고상하게 표현한 것이다. ‘동선’이란 사람들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삶에서 어떤 것에 의미 부여를 하는지 같은 것들이다. 이걸 파악하는 능력이 바로 인문적 상상력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갖고 있는 거의 모든 혼란은 이제 우리가 남의 생각을 모방하는 것만으로는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2014년은 국민 대부분이 우리가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되는가 생각하며 절망했던 해였다. 절망을 넘어 새롭게 나아가야 한다고 말들은 하지만 기존 식대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세월호 사고를 후진국형 재난이라고 하는데 이는 다시 말하면 우리 시스템이 후진국적 시선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말이다. 다들 안전불감증, 준비 소홀, 훈련 부족이 원인이라고 하는데 왜 우리는 그것들을 실천하지 못했을까. 이는 다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오지 않은 것, 만져지는 것들’에 대한 관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 인간이 그리는 동선의 의미와 무늬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대책을 세울 수 있다.” 그는 “대한민국이 지금 거대한 벽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시점”이라고도 했다.

철학, 현재와 미래를 고민해야

“가장 큰 벽이 이념갈등이다. 아직도 50, 60년 전에 시작한 전선(戰線)과 내용에 변화가 없다. 바깥세계는 엄청나게 변했는데도 한 번 받아들인 이념을 진리화해서 네가 옳으냐, 내가 옳으냐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 이념과 정해진 틀을 유지하는 데 정신없는 정치인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정말 대한민국이 이 정도 수준으로 살다 가도 괜찮다고 생각하는가. 새롭게 열어야 할 미래의 길을 놓쳐도 정말 괜찮다 보는가.”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념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그 생각이 온전히 자기 것이라고 믿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현실 세계를 자기 생각으로 재단한다는 점에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그저 읊는 것일 뿐이다. 바깥세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이를 토대로 자기 생각을 펴는 일이야말로 ‘철학하기’의 시작이다.”

그의 눈빛은 상대방을 꿰뚫을 것처럼 매우 강하다. 반백의 짧게 깎은 머리, 청바지와 스니커즈를 즐겨 신는 모습에서는 신세대 철학자 같은 면모를 느끼게 한다.

그는 “우리는 새해, 건국 이후 가장 어려운 과제를 받아들었다고 볼 수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민주화 산업화의 벽을 성공적으로 넘었다는 점에서 매우 드문 나라이다. 이제 ‘선진화’라는 과제가 남아 있다. 안타깝게도 이 벽을 넘은 나라는 많지 않다. 난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기존 것을 답습하고 따라만 가는 문화에 갇혀서는 자신만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발휘하는 것이 훈련되지 못한다. 지성은 없고 비평과 비판만 난무하기 때문에 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도 없다. 2015년부터는 우리가 어떤 벽 앞에 있는지를 공유하고 어떻게 뛰어넘어야 할지 꿈꿔야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이런 질문이 나왔다.

―대학에 수많은 철학과가 있는데 왜 아직도 그런 철학적 힘이 길러지지 못했다고 보나.

“우리 교과과정은 매우 높은 수준에서 세계의 거의 모든 철학적 내용을 소화하고 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우리가 배우는 노자, 공자, 플라톤 철학도 모두 자신들의 시대를 고민한 데서 나온 결과물이다. 기존 철학자들의 생각을 학습하고 이해하는 것을 철학하는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나 역시 앞선 철학자들의 생각을 공부하면서 어느 순간 ‘이건 그 사람들이 살던 그 시대의 문제의식일 뿐’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한마디로 내가 아닌 ‘타인들의 과거’인데 이것을 ‘나의 현재’에 적용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들었다.”

―철학을 공부하려면 책 싸들고 도서관에 틀어 박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철학을 공부하는 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대답보다는 질문에 애쓰고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야말로 가장 ‘철학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분들을 만나보면 한국 사회에서 가장 절박하게 생존을 고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국 소비자의 동선을 파악하는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철학과 인문학적 상상력에 달려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다만 질문을 하긴 하는데 그 내용이나 방법이 기존 방식에 머물고 있다.”

그가 이 대목에서 “아인슈타인이 정의한 ‘바보’의 기준이 뭔지 아느냐”고 기자에게 물었다. 기자가 대답 대신 눈만 깜박이자 그의 말이 이어졌다.

“다른 실험 결과를 기대하면서 같은 방법을 계속 쓰는 사람들이다. 이 정부가 내걸고 있는 ‘창조경제’라는 것도 방법을 우선 달리 적용하는 것을 고민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구호로 그칠 공산이 크다.”

노장사상은 지극히 현실적

본래 인터뷰는 그의 노장사상 강의를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려 했는데 ‘철학하기’에 대한 근본적 성찰로 바뀌어 갔다.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노장사상인 무위(無爲)를 평소 매우 적극적인 개념으로 해석하고 있던데….

“무위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어떤 틀에도 갇히지 않는 자유로움을 강조한 말이다. 노자는 무위를 말하면서 모든 것을 이루는, 즉 무위하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뜻의 ‘무위이 무불위(無爲而 無不爲)’를 말했다. 다시 말해 바깥세계를 남이 봐야 하는 대로 보는 게 아니라 보이는 대로 보라는 것이다. 이에 비해 유학(儒學)은 어떤 명분, 규범을 갖고 세상을 본다. 시스템을 만들 때에는 의미가 있지만 지금 같은 글로벌 모바일시대에는 맞지 않는다. 유학사상이 주도권을 가지면서 노장철학을 두고 현실 도피적, 반문명적이라고 몰아갔는데 오히려 거꾸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라고 강조한다는 점에서 노장사상이야말로 더 현실적이다. 요즘 서양에서 노장사상과 불교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노장철학이 디지털 시대에 맞는다고?

“디지털, 모바일, 무한접속 시대에는 집단이 아닌 개인이 중요한 시대이다. 스마트폰을 쓰는 세대는 PC를 쓰던 세대보다 훨씬 더 개별적이다. ‘사명’보다는 ‘재미’가 더 의미 있는 시대이다. 노장철학은 자율과 개별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현대와 더욱 가까운 거리에 있다.

대화가 무거운 듯해 분위기를 바꿨다.

―흔히 철학은 돈이 안 된다고 하는데(웃음)….

“대박은 철학에서 나온다(웃음). 잡스가 대표적 아닌가. 남의 것을 모방만 해서는 큰돈을 벌기 어렵다.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부자 되기 어렵겠지만 철학적 수준에서 사업하는 사람은 큰 부자가 될 것이다.”

창의적 인재 뽑아 무상교육 계획

―최근 젊은 인재 양성기관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뭔가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벽을 넘기 위한 실천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뭐니 뭐니 해도 사람을 키우는 일 아닌가. 벽 앞에 서서 평가만 하고 논평하는 사람, 전략이 아닌 전술적 차원으로만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큰 틀을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인재 말이다. 마침 이런 취지에 공감한 기업인(두양문화재단 오정택 회장)이 사재 100억 원을 털어 공간과 운영비를 지원해주기로 했다.

―지원자격은 어떻게 되나.

“만 19∼29세 젊은이 중 30여 명을 무상으로 교육한다. 학력 불문이다. 심층인터뷰만으로 입학생을 뽑을 것이다. 1월에 선발 공고를 하고 3월 4일에 첫 수업을 할 예정이다. 교수진은 건축과 디자인(국민대 김개천 교수), 뇌과학(KAIST 김대식 교수), 복잡계 물리학(KAIST 정하웅 교수), 고대근동종교와 언어(서울대 배철현 교수), 기호학(고려대 김성도 교수), 서양철학과 미학(서강대 서동욱 교수), 서양역사(서울대 주경철 교수), 미술사(한국예술종합학교 양정무 교수), 동양철학(서강대 최진석 교수) 등이다. 배 교수가 리더이다. 1년 과정인데 2016년부터 확대할 생각도 있다.”

―지원자가 많을 것 같다.

“아직 신문 공고도 안 냈는데 내 자식 좀 어떻게 안 되겠느냐는 질문이 많다. 심지어 50대들도 관심이 많다. 미안하지만 30세 이상은 안 된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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