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School Diary]고교 동아리 가입… 무한 경쟁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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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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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모 양(17)은 순서가 되자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섰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의자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방송용 카메라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에 의지해 자리에 앉자 어둠 속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기자랑 해봐요.” 쭈뼛거리던 오 양이 노래를 부르려 하자 어둠 속 목소리는 “진짜 하려고 했어요? 여기가 무슨 오디션장인가?”라고 쏘아붙였다. “리비아 사태에 대해서 말해보세요”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오 양이 대답하지 못하자 “그런 것도 몰라?”라는 냉소적 한마디가 돌아왔다.

취조실이 아니다. 대입 면접장도 아니다. 이곳은 전남지역 한 자율형 사립고 방송반의 신입부원 선발을 위한 면접장. 생방송인 교내방송을 떨지 않고 배짱 있게 진행할 수 있는 신입부원을 뽑기 위한 ‘압박면접’이었다.

오 양은 “면접을 하다 울음이 터져 훌쩍이며 면접장을 나온 학생도 있다”면서 “무섭긴 하지만 이 과정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야 동아리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대입 수시전형이 확대되면서 입시에서 주요 비교과활동 ‘스펙’으로 활용되는 교내 동아리에 가입하기 위한 고교생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새 학기를 앞두고 실력 있는 신입부원을 뽑기 위해서 각 동아리들은 별의별 선발방법을 총동원한다.

1박2일 엠티를 가서 합숙하며 ‘다면 심층평가’를 하는가 하면, 면접 대기실에 동아리 선배가 ‘비밀요원’으로 투입돼 지원자가 눈치 채지 못하는 방법으로 ‘인성 면접’을 하기도 한다. 최근 주요 동아리의 지원자가 대폭 늘어 경쟁률이 높아진 데다 선발과정도 까다롭다보니 학생들 사이에서는 ‘대학가기보다 인기 동아리 가입하기가 더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

한 고교 경제경영 동아리는 ‘모의투자대회’를 열어 높은 수익률을 올린 학생을 선발할 계획. 동아리 가입 희망학생을 대상으로 약 한 달간 한국은행 경제교육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모의투자 게임을 진행한 뒤 수익률을 평가하겠다는 것. ‘3년 만기 국채거래’ ‘국제원유 선물거래’ 등에서 좋은 성과를 내야 고교 경제동아리에 들어갈 수 있다니….

이 동아리 증권부장인 이모 군(16)은 “수익률 5등 정도까지를 우선 선발할 생각”이라면서 “수익률이 뛰어난 학생은 입시 활용도가 높은 주요 직책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제주의 한 여고 외국어신문반은 외국어 면접을 통과해야 가입할 수 있다. 동아리 지원학생은 자신이 희망하는 언어(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에 맞춰 선배 면접관 3인이 진행하는 면접을 받는다. 질문과 답변 모두 해당 언어로만 이루어진다.

이 동아리 김모 양(17)은 “대학 수시모집을 통해 어학특기자나, 어문계열 학과로 지원하려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 지난해는 12명 선발에 80명 넘게 지원했을 정도”라면서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학생은 ‘특채’가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에 힘입어 동아리 신입부원 선발을 위한 서바이벌 오디션이 열리기도 한다. 울산의 한 고교 방송반은 끼와 적극성 등을 평가하기 위해 장기자랑 오디션으로 신입부원을 뽑는다. 50여 명의 지원자가 ‘최종 8인’에 들어가기 위해 경쟁을 펼쳤다.

춤과 노래는 기본. 성대모사를 하거나 ‘팔 힘이 세 일을 잘할 수 있다’며 면접관 학생에게 팔씨름을 제안한 학생도 있었다. 이 학교 박모 군(17)은 노래방서 리허설을 하는 등 10일간 맹연습을 한 끝에 가수 강진의 ‘땡벌’을 선보여 동아리에 들어갔다.

박 군은 “방송반 경력은 미디어관련 학과에 지원할 때 유리할 뿐더러 봉사시간도 40시간이나 인정해주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이태윤 기자 wol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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