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박명석/남북한 ‘話法의 장벽’

  • 입력 2003년 10월 15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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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석
세계화 시대, 각국은 문명적 대화(civilized dialogue)의 시대를 지향하고 있지만 북한은 유독 협박과 공갈로 일관하고 있다. 벼랑 끝 전술이 유일한 대화 기법인 양 반복하고 있다.

문화간 또는 국가간 대화가 예측 가능한 보편적 대화기법을 통해 문명적 대화로 나아간다고 하지만 각 문화의 본질적 차이에 따른 갈등으로 인해 지구촌의 현실이 여전히 암울한 것도 사실이다.

오늘날 언어 차이를 포함한 문화적 장벽은 문명적 대화에 잘 길들여진 국가간에도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주요 장애물이다. 1971년 9월 미국 워싱턴에서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과 일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총리간에 있었던 미일 무역회담을 예로 들어 보자. 두 나라 언어와 문화에 완벽한 통역자(balanced bilingual)들이 동원되었지만 회담에서 실제 의사소통은 약 30%밖에 이뤄지지 않아 심각한 외교위기 상황까지 갔었다.

닉슨 대통령이 미일간의 무역 역조 시정을 촉구한 데 대해 사토 총리는 “각하가 처한 입장을 충분히 이해(와카리마스)하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응수했다. 미국측은 이 말을 동의의 표시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일본말에서 ‘와카리마스’, 즉 ‘이해한다(understand)’는 말은 상황에 따라 ‘상대방의 견해에 동의는 하지 않지만 동정은 간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결국 이 말은 “나는 할 수 없다(I can't do it)”의 우회적 표현이었던 것뿐이다.

이처럼 예의를 갖춘 보편적 대화 기법이 동원돼도 문화간 대화는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하물며 이질화될 대로 이질화된 남북한간의 대화 장벽을 해소하는 것은 난제 중의 난제다. 북한은 툭하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든다는 등의 협박성 발언을 일삼고 있다.

세계가 이질 문화권간의 장벽을 극복하고 문명적 대화를 통해 인류공영의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는데 오직 북한만이 충동적이고 도전적인 ‘독백’을 일삼고 있으니 어떻게 문명세계를 감동시켜 타협을 이끌어 낼 수 있겠는가. 북한 지도부도 변해야 할 때다.

단국대 교수·세계 커뮤니케이션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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