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김정희/축제의 섬 珍島

  • 입력 2003년 5월 9일 18시 09분


코멘트
김정희
5월 남도의 끝자락 진도(珍島)에 가면 우리 민족이 간직해온 축제의 모든 것이 있다. 진도는 문화의 보물섬이고 생태자원이 고스란히 보존된 원형의 섬이다. 누군가는 진도를 ‘진정한 길’이란 의미의 진도(眞道)라고도 말한다. 그만큼 볼거리가 많고 즐길거리가 많다는 얘기다.

얼마 전 올해로 26년째를 맞은 진도의 대표적 축제 ‘신비의 바닷길 영등축제’를 다녀왔다. 해마다 음력 3월 그믐사리 때 회동면 뿔치와 모도를 잇는 바닷길이 열리는 것을 기념해 벌어지는 축제다. 1975년 주한 프랑스대사 피에르 랑디가 진돗개를 보러 왔다가 알린 이후 이 자연현상은 세계적인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미 세계적인 축제가 돼버린 이 축제의 마지막 날, 관광객들은 장대같은 비가 쏟아져도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물길이 열리자 수십만의 관광객들이 어린아이처럼 조개와 낙지를 잡기도 하고 숭어를 잡기도 했다. 진도아리랑이 일본에서 히트한 이래 일본인 관광객도 부쩍 늘었다고 한다. 한 일본인은 “진도의 특산물인 구기자와 돌미역, 검은 쌀과 향기 쌀을 많이 사간다”고 말했다.

진도의 축제는 참 유별나다는 느낌이 든다. 국내 최대의 주민 참여 축제이기 때문이다. 공연자는 서울에서 온 유명 인사들이 아니다. 숙박시설 주인이 생업을 포기하고 그 기간 북춤을 추는 식이다. 때문에 읍내는 텅 비어 있다. 솜씨 좋고 맵시 좋은 진도 아주머니들은 프로 강강술래 꾼이요, 들판의 농부는 진도 들노래의 단골 출연자가 돼버렸다. 이들의 육자배기 가락과 판소리 장단은 나이 든 어른들의 넋을 빼앗아간다. 억울한 고혼(孤魂)의 넋을 위로하는 씻김굿이나 다시래기는 상생(相生)의 한국을 여는 세계적 공연으로 부족함이 없다.

지역 주민과 군 공무원들은 솔선수범해서 이 축제를 준비한다. 보수도 거의 없는 몇 달 동안의 강행군이지만 진도라는 지역공동체 안에서는 일과 놀이가 하나가 된 듯 보였다. 비록 맨땅 위에서 하는 공연이지만 생활에서 묻어나오는 역동적인 무대였다. 수백억원짜리의 초호화 오페라 공연도 멋지지만 이들의 열정적인 공연은 시나위 가락에 실려 바다와 육지로 울려 퍼졌다.

김정희 ㈜KCN컨설팅 대표·서울 강남구 삼성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